[데스크 칼럼] 이진숙 체포, 충격에 떠오르는 1987년이 … 자유민주주의는 어디로?

이정우 기자 / 기사승인 : 2025-10-03 20: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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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시절 서빙고 보안분실 앞에서 벌어지던 비극
-정규재 전 주필 “벌거벗은 행패” 직격

△사진=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10월 중추절 연휴를 앞둔 문턱에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역사의 회오리 속에 서 있다. 지난 2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전격 체포되는 장면이 전국에 중계되자, 국민의 뇌리를 스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직전의 음습한 권력기관의 그림자였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동시에 작동하며 권력의 의도에 따라 특정 인물을 제압하는 장면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 서빙고 보안분실 앞에서 벌어지던 비극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전직 위원장의 신병 처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불과 몇 일 전, 78년 만에 검찰청법이 폐지되며 국가 사법 질서의 근간이 흔들렸다. 하루아침에 정부 부처가 없어지고, 법치주의가 입법의 다수결에 의해 간단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권력기관이 불출석 사유서 한 장을 기록에 첨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죄목을 달아 전직 방송통신위원장을 수갑 채워 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탈을 쓴 권력의 폭주가 눈앞에서 재현된 것이라고 많은 보수 논객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이를 두고 “벌거벗은 행패”라 직격했다. 진중권 교수 역시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라며 섬뜩한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단순히 보수 진영의 반발만은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경찰이 부적절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공권력의 집행 방식과 시점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력의 긴장은 사회의 균열을 낳고, 결국 민주주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단 하나다. 대한민국이 다시 ‘다수의 횡포’에 길들여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이다. 이 전 위원장이 ‘다수의 독재’ 가능성을 경고한 발언이 오히려 체포 사유가 됐다는 점은 기묘한 역설이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를 정치적 불편함을 이유로 구속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경찰·검사·판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장동혁 대표는 “불출석 사유서를 은폐한 것은 중대한 범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나경원, 조배숙 의원도 “정권의 반대자를 입막음하는 행위”라 비판했고, 신동욱 의원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최종 목적이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 논란이 정권의 존속 여부를 흔드는 정치적 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 대표가 “이 사건이 이재명 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 언급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도 있다.

 

민주당은 ‘사필귀정’이라며 정당한 법 집행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이 해명한 대로 “수사에 응하지 않아 영장을 집행한 것”이라는 설명만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혐의 자체도 그리 무겁지 않은데, 그 대상이 정권 비판적 인사라는 점은 정치 보복 의혹을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적을 구속하는 방식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1987년의 거리를 메운 국민은 권력의 폭주에 제동을 걸었다. 오늘의 대한민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권력기관의 무리한 체포가 민주주의를 강화했는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했는가. 역사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 국민은 다시 1987년의 기억을 꺼내 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각자의 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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