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 개봉한 송혜교 주연영화 ‘오늘’이 처참한 흥행 실패를 맛보고 있다. ‘오늘’의 첫 주말 기록은 불과 2만7424명. 주간흥행 9위다. 이대로 가다간 10만 관객조차 채 못 채울 가능성도 있다. 거의 독립영화 수준 흥행이 된다.
물론 송혜교 영화의 실패는 딱히 의외랄 것까진 없는 일이다. 안방극장 스타에서 영화계로 첫 진출한 2005년작 ‘파랑주의보’ 실패 이래 송혜교는 단 한 번도 영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둬본 적이 없다. 2007년 ‘황진이’는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불구,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고, 2008년 출연한 미국 로케영화 ‘페티쉬’는 제작으로부터 무려 2년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개봉, 소리 소문 없이 극장가에서 사라진 바 있다. 그 다음이 ‘오늘’이다. 그나마 흥행경력이 있는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지만, 송혜교 실패행보의 최신 업데이트로 끝나버렸다.
더 큰 문제는 송혜교 인기의 ‘텃밭’ 역할을 했던 TV드라마 행보는 현재로서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2004년 KBS2 ‘풀하우스’의 성공 이후 송혜교는 2011년 현재까지 단 한 편의 TV드라마에만 출연했다. 그게 KBS2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세상’이 시청률 면에서 참패를 거두고, 이후 TV드라마 출연이 끊겨버리자 송혜교는 일약 ‘안방극장 최고스타’에서 ‘스크린에서도 안방극장에서도 모두 실패한’ 배우로 넘어가버렸다. 최악의 입장으로 돌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를 가장 정확히 지적한 것이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의 엔터미디어 10월29일자 칼럼 ‘송혜교, 왜 ‘풀하우스2’를 버렸나’다.
칼럼은 “20대에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을 지녔던 여배우는 30대만 되어도 과거의 컨셉을 유지하기 힘들다. 새로운 후배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아직 늙은 나이가 아닌데도 신선한 매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제작자들도 과거 귀엽고 예뻤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이런 여배우들을 변신시키기가 쉽지 않아 캐스팅을 꺼리는 추세”라면서 “그렇다 보니 송혜교는 다른 작전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작가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든가 독립영화나 조금 더 강한 이미지로 나온다. 국제적인 작품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볼 때 이 방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파랑주의보’, 사극 ‘황진이’, 미국 독립영화 ‘페티쉬’, 옴니버스영화 ‘카멜리어’ 등 영화에서는 한 번도 티켓파워를 보여주지 못했다. 량차오웨이, 장쯔이 등과 함께 출연하는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는 3년째 촬영이 이어지고 있다. 비주얼과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배우보다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되려는 송혜교의 의지는 읽을 수 있지만, 배우가 대중성도 갖춰야 한다.”며 “송혜교에게 추천하겠다. 방향을 선회하라는 주문이다. 10년 전 통통 튀는 매력이 반감됐다 해도 송혜교는 송혜교다.
물론 상황은 좋지 않다. 10대 후반부터 새로운 후배들이 귀엽고 발랄한 여배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자꾸 무거운 작품에 도전하는 건 자신의 특기를 살리지 못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이른바 ‘송혜교 딜레마’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본래 10~20대에 소녀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얻은 여배우들은 30대 언저리 커리어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송혜교는 이미지 관성에 매달리는 TV드라마 출연을 고사하고, 30대 이후를 가늠하기 위해 영화 장르에서 연기변신을 시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선택이 올바르지 않았고, 그나마 작품행보가 꾸준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흥행전패’의 굴욕을 뒤집어쓰게 됐다는 얘기다.
송혜교와 유사한 딜레마를 지녔던 여배우들도 위 칼럼은 제시하고 있다. 장나라, 채림 등이다. 모두 당대에 소녀적 매력으로 군림했던 이들이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인기가 급감해 이제는 국내활동 자체가 미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반면 데뷔 초부터 소녀적 이미지보다 성인여성 이미지로서 어필했던 김소연, 김하늘, 하지원 등은 여전히 잘 나간다. 연령대 변화에 따른 이미지 변신의 필요가 적었기 때문이다. 처음 팔렸던 콘셉트 그대로 지금도 팔리고 있다.
그렇다면 송혜교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그와 유사한 딜레마를 지녔던 장나라, 채림 등은 이미 인기전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다. 송혜교도 궁극적으로는 그들과 같은 행보를 걸어야만 하는 걸까. 이에 위 칼럼은 송혜교에 ‘다시 ‘풀하우스’ 시절로 돌아오라’고 충고하고 있지만, 사실상 장나라도 채림도 그런 시도를 안 해봤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심심한 반응만을 얻는데 그쳤다. 물론 콘텐츠 파워가 워낙 적었던 작품들을 골라 그 효과가 안 나왔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예 완전히 다른 주문을 송혜교에 던져볼 수도 있다.
송혜교의 변신 시도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로의 미디어 전환도 큰 차원에선 틀리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의 차원에서 계산이 자꾸 엇나가다보니 실패가 이어지고, 드문 콘텐츠 선택도 화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핏 감이 잘 안 잡힐 수 있겠지만, 송혜교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바로 전도연의 경우다.
지금은 ‘칸의 여인’이란 칭호로 대변되고 있지만, 전도연 역시 20대 전반까지는 송혜교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입지였다. 귀엽고 깜찍한 외모로 소녀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여배우였다. 1990년 MBC ‘우리들의 천국’ 시절부터 영화계 데뷔 직전까지 계속 같은 모드였다.
그러다 1997년 영화 데뷔작 ‘접속’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영화계 진입이 이뤄졌지만, 송혜교의 ‘파랑주의보’와는 콘텐츠 선택의 차원만 달랐을 뿐 자세 자체는 크게 다르질 않았다. 본래 갖고 있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미디어 변화만 꾀했을 뿐이다. 다음해 ‘약속’까지도 비슷한 노선으로 볼 수 있다. ‘황진이’에서 송혜교가 맡았던 역할과 노선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송혜교의 ‘파랑주의보’와 ‘황진이’는 기본적으로 송혜교가 팔았어야 하는 콘텐츠였다. ‘파랑주의보’의 차태현과 ‘황진이’의 유지태는 당시 티켓파워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전도연은 나름 안방극장 스타였음에도 신중을 기했다. 모두 당대 티켓파워 측면에서 최상종가를 달리던 남자배우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접속’ 당시 한석규는 ‘닥터봉’부터 ‘넘버 3’까지 단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해본 적 없는 불패의 스타였고, ‘약속’ 당시 박신양은 그 전해 ‘편지’를 대대적으로 히트시킨 장본인이었다. 미디어 변화를 놓고 지나친 승부수를 펼친 입장과 안전한 계산을 꾀한 입장의 명암은 이렇게 갈라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 다음부터다. 1999년, 우리나이 27세가 되던 해, 전도연은 승부수를 던진다. ‘접속’과 ‘약속’의 연이은 히트로 안정적 입지를 구축하고, 이어 출연한 ‘내 마음의 풍금’에서 귀엽고 해맑은 이미지로 또 다시 성공, 이번에는 영화를 ‘파는 입장’으로도 자리를 굳혔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전도연은 자기 이미지를 깨는 시도를 선택한다. 바로 ‘해피 엔드’ 출연이었다.
어마어마한 노출연기와 정사 씬 등으로 화제가 된 ‘해피 엔드’는 곧바로 화제성을 얻어 흥행에도 대성공했지만, 전도연이 ‘해피 엔드’를 통해 얻어낸 것은 비단 또 다른 히트작의 확보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대중에게 전도연은 더 이상 귀엽고 풋풋한 이미지의 소녀배우가 아니었다. 명백한 성인여배우였고, 기존 셀링 포인트를 철저히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온몸을 바치는 프로페셔널이었다.
어차피 전도연의 ‘귀엽고 풋풋한 이미지’는 당시 2~3년 이상 더 써먹을 수 있는 게 못됐다. 말마따나, 서른이 넘어가면 여배우는 대부분 모든 커리어를 선회시켜야 할 필요에 직면한다. 전도연은 그런 ‘피할 수 없는 분기점’이 찾아오기 2~3년 먼저 변신을 시도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중과 비평계의 주목과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후 전도연은 승승장구했다. 이전까진 ‘한 번 노출연기를 했으면 계속 그에 종속돼버린다’는 이상한 공포가 있어 많은 특A급 여배우들이 노출연기를 꺼렸지만, 그건 장르가 다양하지 않았던 1980년대 사정이지 21세기 상황과는 크게 달랐다. 훨씬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폭의 연기를 보여주다 TV드라마로 복귀한 SBS ‘프라하의 연인’까지 성공시켰다. 영화 ‘인어공주’에서 딱 한 번 이전의 ‘귀엽고 풋풋한 이미지’로 돌아가 봤지만, 여지없이 실패를 맞았고, 이후 다시 성인연기로 돌아와 ‘밀양’으로 ‘칸의 여인’이 됐다.
현 시점 송혜교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전환점일 수 있다. 물론, 무조건 벗어야만 살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그러나 성인변신의 전환점을 무조건 성적(性的) 요소가 거세된 지점에서만 찾으려다 보면 이런 식의 콘텐츠, 즉 성인여성의 어둡고 음울한 측면을 강조하는 콘텐츠밖에 남는 게 없어진다. 노출이 그렇게 싫다면, 노출하지 않아도 성적(性的)요소가 강조될 수 있는 콘텐츠를 골라야 옳다. 그럼으로써 성인변신이 일반대중에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콘텐츠를 골라야 옳다는 얘기다.
예컨대 하지원이 출연한 ‘색즉시공’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하지원의 노출 씬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콘텐트 자체는 분명 성인용 콘텐트가 맞고, 그에 따르는 성인변신 파워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최강희의 ‘쩨쩨한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최강희의 화장실 씬은 있을지언정 노출 씬은 전무하다. 그러나 극중 최강희가 보여주는 엽기적 섹스 판타지 대사나 행동들만으로도 영화는 성인여성으로서 최강희의 이미지를 강화시켜준다.
더 중요한 건, ‘색즉시공’이나 ‘쩨쩨한 로맨스’ 같은 콘텐츠는 앞서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가 제시한 방향성, 즉 “자꾸 무거운 작품에 도전하는 건 자신의 특기를 살리지 못하는 행위”이며 기존의 발랄한 분위기로 돌아오라는 주문에도 부합되는 선택이었으리란 점이다. 송혜교의 기존 셀링 포인트도 살리면서 성인변신도 꾀할 수 있는 선택이 됐을 수 있다.
언제부턴가 송혜교의 ‘웃는 얼굴’이 기억나질 않게 됐다. 지난 5~6년 간 송혜교가 콘텐츠 내에서 ‘웃는 얼굴’을 보여준 횟수는, 아마 세어볼 수도 있을 정도로 적었을 것이다. 물론 배우로서 성인변신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신도 송혜교의 ‘웃는 얼굴’을 담보로 한 상태에서 이뤄졌어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었으리란 예상이다.
그런 점에서 송혜교가 지금 찾아봐야 할 건, 또 다른 어둡고 암울한 영화가 아니라, 최강희 등이 차지하고 있는 성인용 로맨틱 코미디들일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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