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안정미 기자]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예술계 성희롱ㆍ성추행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전 예술감독이 여성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데 대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전직 단원들의 증언까지 쏟아져 나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수업이나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희롱,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의 성추행 사례 등을 낱낱이 폭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전 감독은 1986년 부산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해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부산 가마골 소극장, 밀양 연극촌, 지금은 문을 닫은 서울 대학로 게릴라 극장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연극 양식을 갖춘 작품들을 선보여 연극계의 거목으로 떠오른다. 2005년에는 국립극장 예술감독까지 지냈다. 당사자가 연극계의 이름 있는 연출가라는 점 때문에 이번 사건이 주는 충격은 더 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전 감독의 성폭력 사건과 이윤택 연출과 관련된 연극단체에 대해 진상규명과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17일 밤 시작된 청원에는 20일 오전 10시 현재 9만4000여명이 동의했다.
연극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는 극작가이기도 한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했다. 극작가 협회 집행부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극계에 끼친 업적을 이유로 지금의 사태를 외면하지 않겠다"면서 "연극계의 '미투' 운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연극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스스로 점검하고 돌아보며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공개 사과하는 이윤택
진정성 없는 사과에 피해자들 '발끈'
이 전 감독은 성폭력 파문이 갈수록 커지자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성추문 논란에 대해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 다시 한 번 피해 당사자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성폭행을 당한 수많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뻔뻔함의 극치'라면서 분노했다.
성폭행을 처음 폭로한 연극인도 "합의된 성관계란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치욕적이라고 밝혔다.
책임회피를 위한 사과는 오히려 사태만 키웠다.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고 오히려 사과 기자회견이 더 큰 분노로 이어졌다.
진정성 없고 변명으로 일관한 이번 기자회견으로 대중의 불신과 분노와 맞물려 당분간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성폭력 근절 대책' 추진…실효성은 '글쎄'
연극ㆍ문화ㆍ영화 등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과거에 이뤄진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직 내 성폭력을 근절 대책 추진에 나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그동안 현장 예술인,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 등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문화 예술계 성희롱ㆍ성추행 예방ㆍ근절을 위해 논의해왔으며, 그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문화 예술계의 특성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로 했다.
또한 성평등문화정책위원회를 통해 성희롱·성추행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위원회 논의 사항과 분야별 실태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더욱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예방 및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문체부는 밝혔다.
성폭력 가해자와 은폐ㆍ방조자, 관리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가해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직 이상의 중징계가 검토되고, 은폐ㆍ방조자는 성실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받게 된다. 관리자도 서면 주의ㆍ경고 조치는 물론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관행적이고 고질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성폭력에 대한 예방대책은 시.군, 교육청, 경찰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각종 방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역부족인 실정이다.
한 문화정책 전문가는 "여론이 들끓는 지금에 와서 대응책을 발표하다 보니 '뒷북'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성폭력을 실질적으로 예방하는 방안과 함께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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