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스포츠 초대석] ② '폭풍 발리' 유진선

심재희 / 기사승인 : 2011-09-19 18: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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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테니스의 전설 "테니스는 내 인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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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우리나이로 쉰이 된 한 남성이 실내 테니스코트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한데, 도저히 쉰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현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현역 선수들 뺨을 치고도 남을 기량이다. 한국 테니스 역사에서 최고 스타로 손꼽히는 유진선. 그가 이번 스타토크의 초대손님이다. 선수 시절 유명세에 비해 은퇴 이후 소식이 뜸했던 그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선수 시절 수려했던 용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는 그가 날리는 샷처럼 호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폭풍 발리' 유진선의 테니스 인생을 시원하게 벗겨봤다.

# 아웃사이더 유진선

"갑자기 은퇴해서 왜 소식이 없나?" 평소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 여자 후배가 유진선을 인터뷰 한다고 하자 부탁한 질문이다. 조금 쌩뚱맞기도 했지만 근황을 물으며 후배의 질문을 대신 던졌다. "아웃사이더였죠." 그가 선수 시절 때렸던 시속 200km 이상의 서브처럼 묵직한 대답이 되돌아 왔다. 유진선은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간간이 소식이 전해졌지만,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조용한 일상이었다. 이에 대해 유진선이 말문을 열었다.

"선수 생활을 접은 이후 여러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선수 이후에는 조금 쉬고 싶었어요. 선수로서 정말 열심히 했었고, 충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었죠." 그렇게 유진선은 자신이 표현하는 외도를 즐겼단다. 하지만 결국은 테니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5~6년 정도 다른 운동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농구, 스키, 골프, 그리고 철인 3종경기까지 모두 섭렵했죠. 나름대로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테니스가 저에게 가장 잘 맞더군요.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진선은 1990년대 말부터 주니어 선수들을 발굴해 키웠다. 그 선수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선진 테니스 기술을 익혀나갔다. 학교와 실업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자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단다. "가능성 있는 주니어 선수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키워냈죠.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선수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제가 부족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로서의 한계를 느꼈다고 할까요." 테니스에 대한 열정과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던 유진선이었지만, 말하기 힘든 부분들이 그의 힘찬 전진에 적잖은 제동을 걸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아시안게임 전관왕의 추억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아 1986년 아시안게임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당시 유진선은 슈퍼스타였다. 테니스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때가 24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량이 정점에 오르는 때였죠." 당시 유진선의 인기는 스포츠 스타를 넘어 연예인 수준이었다. 188cm의 건장한 체구에 핸섬한 얼굴로 많은 여성팬들을 보유하기도 했다. 앞서 질문을 부탁한 여자 후배도 유진선의 팬이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유진선은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당연히 큰 기대를 받았다. "당연히 자신 있었습니다. 제 실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정상에 오를 거라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이유있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유진선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2연패에 실패했다.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4년 전 자신을 향하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이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은메달을 따낸 것도 나름대로 좋은 성과였지만, 유진선을 향한 기대와 시선이 컸기에 비판적인 시각이 주를 이뤘다. 이에 유진선은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성적으로 말하는 것이니까요.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제 스스로도 조금 실망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은퇴로 책임을 지자고 결정했죠." 그렇게 유진선은 은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4관왕에 오르면서 유진선은 병역특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프로무대에는 설 수가 없었다. 당시 병역특례 체육인은 5년 동안 아마추어로 머물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진선이 프로로 전향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세계 10위 안에 충분히 들 수 있었을 겁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유진선은 데이비스컵에서 세계 톱 랭커들과 대결을 펼쳐봤다. 세계 40위 정도의 선수는 가볍게 꺾었고, 8위 정도의 선수와도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을 때 프로로 가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강한 선수들과 자주 만났다면 저도 더 강해질 수 있었겠죠. 선수들은 직접 경기를 해보면 압니다. 데이비스컵에서 만난 톱랭커들 충분히 꺾을 수 있는 상대들이었습니다." 유진선의 세계랭킹 최고 기록은 194위. 프로무대에서 뛰지 못했기에 랭킹포인트를 쌓을 수가 없어서 나온 기록이다. 현재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과 같은 세계 톱랭커들과 접전을 벌일 수도 있었던 유진선이었다.

# 유진선 vs 이형택

유진선으로부터 남자테니스 에이스 계보를 이어받은 선수는 이형택이다. 이형택은 2000년 들어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들었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면서 한국테니스의 저력을 뽐냈다. 2003년 ATP투어(호주 시드니 아디다스인터내셔널대회)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고, 세계랭킹 36위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다. 2009년 은퇴할 때까지 숱한 명승부를 만들어내면서 테니스 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이형택 이야기가 나오자 반색하며 이야기를 건네는 유진선이다. "형택이는 정말 좋아하는 후배이자 동생입니다. 성실한 자세로 만들어낸 정확하고 날카로운 기술들이 인상적이죠."

이형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본인과 이형택의 전성기 시절 맞대결이 펼쳐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유진선은 곧바로 "내가 이기죠"를 외쳤다.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닌가?"로 되물었더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가 더 유리합니다"라고 또 한 번 이야기 한다. 유진선은 "일단 파워에서 제가 앞섭니다. 서브의 강도에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택이가 패싱샷으로 가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을 자신이 있죠. 아마도 전성기 때의 맞대결이라면 세트스코어 3-1 정도로 제가 이기지 않을까요"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유진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폭풍 발리'라는 별명이 떠올랐다. 세계 톱랭커 가운데서도 파워와 기술을 겸비해야 펼칠 수 있다는 발리 플레이를 유지선은 곧잘 선보였다. 유진선의 발리 플레이와 이형택의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맞대결을 벌인다고 상상하니 묘한 흥분감이 감돌았다. 두 선수의 장점이 합쳐진다면 어떤 선수가 탄생할까라는 즐거운 상상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상에 빠져 있던 찰라에 유진선이 말을 건넸다. "형택이의 장점을 제가 갖췄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배울 게 많은 후배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속 깊은 선배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

# 한국테니스의 가능성

유진선은 2003년 중국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의받았다. 많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테니스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중국 대표팀을 맡고 현지 관계자들은 유진선 감독의 모습에 여러 차례 놀랐다. 중국 지도자들과는 달리 적극적이면서도 세심한 지도 방법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땡볕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1-1로 단식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중국 지도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선수들 앞에 서서 러닝을 이끌고 땀으로 흠뻑 젖는 것 자체가 매우 좋았습니다." 유진선 감독의 솔선수범에 놀란 관계자들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대표팀을 부탁했다.

유진선 감독이 중국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특종감이었다. 당시 중국의 에이스급 선수와 1-1로 단식대결을 펼쳤는데, 거의 다 자신이 승리를 거뒀단다. "한국나이로 42살이었는데, 20대 선수들을 이겼습니다. 1세트 대결이었기 때문에 체력과는 상관없이 기술과 파워, 경험 등에서 승부가 갈린 거죠. 이 장면을 보고 선수뿐만 아니라 테니스 관계자들이 정말 많이 놀랐죠." 현역 대표 선수를 이기는 감독이라. 중국 입장에서는 유진선 감독이 '괴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중국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중국 여자 선수들의 성장세에 대해서 질문했다. 세계랭킹 4위까지 올라있는 리나 같은 선수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는 "중국은 테니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한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훈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원이 대단합니다. 투자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니 좋은 선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죠." 곧바로 "한국테니스도 지원이 이뤄진다면 성장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당연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유진선의 이름을 걸고서

현재 유진선은 SBS ESPN에서 테니스 해설을 맡고 있다. 테니스 해설위원으로서 또 다른 모습을 펼쳐 보이고 있다. 윔블던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고, 개인적으로도 기대되는 경기가 많다고 언급했다. "해설위원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이어야 하고 쉽게 설명을 해야 시청자들의 이해가 빠르죠. 제가 느꼈던 테니스의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진선은 2000년대 중반에 교수로도 활약했었다. 동원대학 겸임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쳤다. 감독에 해설위원에 교수까지. 팔방미인이라는 뻔한 표현이 바로 떠올랐다.

유진선 해설위원은 한국테니스를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귀뜸했다. 한국테니스가 세계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노력을 실천 중이라고 말했다. "테니스로부터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테니스는 내 인생의 전부죠. 한국테니스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그 생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유진선이라는 이름을 걸고서 한국테니스를 위한 멋진 승부수를 띄우고 있습니다."

전무했던 아시안게임 4관왕에 오르면서 슈퍼스타로 떠올랐던 유진선.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서도 세계 무대에 서지 못하며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우리들의 테니스 영웅. 예상보다 일찍 은퇴를 결정하면서 팬들을 아쉽게 했지만, 그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한국테니스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그의 말처럼 유진선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가 선수 시절 줬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자리잡는다. 유진선이 또 한 번 한국테니스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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