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준비된 부동산 대책’… 다시 희망을 걸어야 하는 서민의 비애

이정우 기자 / 기사승인 : 2025-12-07 22: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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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0여 차례 대책의 실패 기억… ‘다 준비됐다’는 말이 더 무섭다?
-10·15 대책 뒤에도 고공행진하는 집값… 서민의 기대만 반복해서 소진된다

▶문재인 정부 20여 차례 대책의 실패 기억… ‘다 준비됐다’는 말이 더 무섭다?

 

 정부가 또다시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적 준비는 모두 끝났다”고 선언했다. 7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온 이 발언은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간의 성과 보고라는 무대에서 공개됐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지난 10·15 대책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들려온 ‘준비된 정책’이라는 표현은, 씁쓸하게도 국민에게 익숙한 데자뷰(déjà vu)를 불러온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20차례 넘게 발표됐던 부동산 대책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국민은 너무 잘 안다. 규제와 공급, 세제와 금융이 뒤엉킨 정책의 파편 속에서 집값은 오히려 두 배 넘게 뛰었고, “정부가 오히려 투기를 부추겼다”는 냉소적 뒷담화가 골목 선술집의 단골 메뉴가 됐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10·15 대책 이후의 시장 흐름 또한 정책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이를 “수도권 과열에 브레이크를 건 조치”라 설명하지만, 현실의 집값은 정책을 비웃듯 다시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거래는 얼어붙었으나 호가는 오르고, 전세 불안이 되살아나면서 무주택 서민의 좌절은 더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정책적 준비는 다 돼 있다”는 대통령실의 발탁 발언은 시장에는 경고일지 몰라도, 서민에게는 마지막 남은 희망줄일 뿐이다. 절망을 딛고라도 정부의 한 마디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무주택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의 흐름을 예민하게 살피고 있다. 부동산 민심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투기 잡으려다 무주택자 잡는다’는 10·15 대책 당시의 비판적 언론 제목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민심을 어루만지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실효성이다.

 

대통령실은 이번에 “국토 균형발전이 수도권 부동산 해법의 핵심”이라며 장기적 구조개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역시 공급 부족과 쏠림 현상을 문제의 근원으로 진단하며 “브레이크 조치는 일시적인 대응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지방 우대 정책, 주택 건설 확대 등 각종 대책을 매주 점검하며 추진 중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정책 발표’가 아닌 ‘정책의 일관성’을 먹고 움직인다. 공급 확대가 말뿐이어서는 안 되고, 세제·금융·공급 정책이 서로 충돌해서도 안 된다. 정책은 장기 계획을 향해 직선으로 가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의 압박에 따라 매번 꺾이고 흔들린다면 시장의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여론 속에서는 더욱 날선 지적들이 나온다. “브레이크를 잡으니 승객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 아니냐”는 냉소, “부동산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자조 섞인 탄식, 고가주택에 대한 정교한 세제 개편 요구 등은 정부가 되새겨야 할 현실적 목소리다. 일부 지역에서 중개업계의 담합 행위가 고착화됐다는 제기, 이른바 ‘가두리 영업’으로 시장 가격이 왜곡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시장의 신뢰가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정책의 기술적 정교함뿐 아니라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도 병행돼야 한다. ‘공급 부족’과 ‘수요 과열’이라는 구조적 문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장의 왜곡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국민의 삶, 가계의 미래, 지역의 방향, 국가의 질서가 얽힌 가장 복합적인 영역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화려한 정책 발표로 단기적인 효과를 노려서는 안 된다. 100년짜리 정책이 어렵다면 최소한 10년 뒤에도 “그때의 결정은 옳았다”고 평가받을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서민은 정치적 수사보다 결과를 본다. 집값이 안정되고, 전세 불안이 줄고, 내 집 마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것. 그 실체가 없는 한 어떠한 ‘준비된 정책’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다시 한번 기회의 문 앞에 서 있다. 이번에도 시장이 요동치고 서민의 고통이 깊어졌는데도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부동산 정책은 또 하나의 실패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부디 이번만큼은 선언이 아닌 실천, 구호가 아닌 구조개혁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주기를 바란다. 서민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리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선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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