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3대 악재를 맞아 연쇄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고려개발의 예에서 보듯 금융권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회수 압박의 수위를 높이며 건설사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또 최근 조달청 등 발주기관에 조작한 입찰서류를 냈다가 적발돼 공공공사 수주 통로가 막힌 건설사가 부지기수다.
이에 더해 정부는 최저가낙찰제 대상 공사를 확대할 방침이어서 업계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호재는 찾아볼 수 없고 악재만 가득한 형국이다.
◇끝나지 않은 PF부실 악몽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100위 이내 건설사 가운데 25개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다. 상위 건설사 4개 중 1개 업체가 부실로 신음하고 있는 셈이다.
올 들어서만 동양건설산업, 진흥기업, LIG건설, 범양건영, 동일토건, 신일건업, 임광토건, 고려개발 등이 무너졌고, 월드건설과 대우자동차판매는 워크아웃에서 법정관리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특히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PF 부담이 큰 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권이 부실을 털어내거나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PF 만기연장에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선 탓이다.
PF란 사업자가 제안한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자가 자금을 제공하면 사업을 통해 얻는 이익으로 채무를 갚아나가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대출을 받으면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서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 건설사는 사업실패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LIG건설의 경우 수도권 각지에서 주택사업을 벌이며 1조원 가량의 PF 부담을 졌다가 금융권으로부터 만기연장을 거절당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동양건설산업 역시 삼부토건과 함께 손을 댔던 헌인마을 사업의 PF 4270억원에 대한 만기연장에 실패해 법정관리행을 택했다.
지난달 30일 워크아웃을 신청한 고려개발도 마찬가지다. 고려개발은 용인성복지구 16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분양사업에 나섰다가 3600억원에 달하는 PF 부담을 졌다. 특히 대주단이 PF 이자율을 최고 15%까지 올리고 만기연장도 6개월 초단기로 변경하면서 고려개발은 4년간 이자로만 1050억원을 썼다.
이후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사업방식을 변경키로 하고 대주단에 금리감면 및 3년 만기연장을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특히 고려개발의 경우 모기업인 대림산업이 38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실시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금융권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그동안 상당한 유동성을 창출했지만 금융권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PF 상환과 이자 지급에 이를 대부분 소진했다"며 ""건설사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대주주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이 무차별적으로 자금줄을 죄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건설업계에서는 수주감소와 유동성 위기의 악순환에 처한 상황에서 금융권의 압박까지 더해지면 20~30개 건설사가 추가로 무너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무더기 입찰제한에 공공공사 수주도 막혀
건설업계는 최저가낙찰제 대상 공공공사에서 시공실적증명서 등 입찰서류를 허위로 제출했던 관행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조달청은 지난달 28일 최저가낙찰제 관급공사에서 입찰서류를 위조한 건설사 68개 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하고 최장 9개월의 제재를 결정했다. 국가계약법에 따라 부정당업체로 지정되면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 발주하는 모든 관급공사의 입찰이 금지된다.
최저가낙찰제 공사는 품질 담보 없이 가격만 낮춘 덤핑입찰을 막기 위해 입찰금액 적정성 심사를 실시하는데 이들 건설사는 심사 통과를 위해 관행처럼 시공실적 등을 허위로 제출해 오다 적발됐다.
기간별로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한라건설 등 4개사는 9개월간 입찰금지를 통보받았다. 6개월간 제재를 받은 곳은 남광토건, 금호산업, 현대산업개발, 경남기업, 두산건설, 계룡건설산업, 울트라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삼환기업, 코오롱건설, 태영건설, 한신공영, 벽산건설, 삼부토건, 화성산업, 쌍용건설, 한진중공업, 고려개발, 진흥기업 등 39개사이며 나머지 25개사는 3개월간 입찰이 제한된다.
이에 더해 지난달 30일 한국도로공사가 15개 건설사에 대한 6개월간의 입찰제한 처분을 내렸고 이어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 1일 6개월간 입찰제한을 43개 건설사에 통보했다. 각 지자체들도 40여개 건설사를 부정당업체로 지정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복적발된 건설사를 제외하면 부정당업체로 지정된 건설사는 90여개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시공능력 100위권 이내 업체만도 60곳 가량이다.
이들 건설사의 공공공사 매출액 비중은 적게는 8%에서 많게는 절반 가량에 이른다. 이를 지난해 매출 기준 금액으로 환산하면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건설사당 약 600억원에서 최대 1조8000억원까지 손실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관급공사 입찰마저 금지될 상황에 처하자 업계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제재 대상 건설사들은 공공공사 입찰 중단이 시작되는 오는 13일 이전에 행정처분 효력정지신청을 낼 예정이다. 이미 대림산업과 경남기업, 울트라건설, 한라건설, 삼부토건 등은 효력정지신청을 제기했으며 이후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통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입찰제한 통보를 받은 A 건설사 관계자는 "서류조작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최저가낙찰제라는 시스템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며 "정부에서 제시하는 설계가가 현실적이지 않은데도 이를 최저가에 입찰한 업체로 선정하겠다는 논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워크아웃 중인 B 건설사의 관계자는 "신용등급 때문에 민간공사 수주도 거의 불가능한데 관급공사 수주까지 막아 버리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제재 수위가 너무 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방 및 중소 건설사는 내년부터가 더 걱정이다. 최저가낙찰제 대상 공사가 현행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서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지방에 위치한 C 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300억원 미만 공사는 적격심사 낙찰제가 적용돼 규모가 작은 건설사도 수주가 가능했다"며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되면 자본력을 지닌 대형 건설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 건설사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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