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패스미스] '계륵'으로 전락한 슈퍼스타들

심재희 / 기사승인 : 2011-12-02 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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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디뉴부터 테베스까지! 그들이 몰락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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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계륵(鷄肋). 닭의 갈비뼈. 버리기에는 아깝고 뜯어 먹을 살은 없음. 큰 소용은 못 되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일컫는 말.

축구판에도 '계륵'이 존재한다. 감독의 입장에서 위에 언급한 사전적인 의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자신의 팀에서 쓰기에는 뭔가가 모자라고, 이적을 시키자니 못내 아쉬운 선수들을 '계륵'이라 칭한다. 슈퍼스타들 가운데 '계륵'으로 전락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아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유럽의 빅리그 빅클럽에도 '계륵'은 화젯거리 가운데 하나다. 팬들을 아쉽게 만드는 '계륵'으로 전락한 슈퍼스타들을 살펴본다.

# 호나우디뉴

호나우디뉴는 가장 급격하게 무너진 슈퍼스타로 꼽히는 선수다. 자기 관리 실패로 인해 슈퍼스타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외계인'이었던 그가 하루 아침에 '지구인'이 되어버렸다. 호나우디뉴는 그레미우와 파리 생제르맹을 거쳐 2003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잠재력을 확실히 폭발했다. 이적 첫 해 32경기(이하 리그, 컵대회 모두 포함)에서 15골 11도움을 올리면서 팬들을 열광시켰고, 2006-2007시즌까지 4시즌 동안 128경기에서 62골 52도움을 올렸다. 환상적인 개인기와 골문 구석을 찌르는 프리킥, 거기에 상대 수비진을 일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킬러 패스와 등과 어깨로도 동료에게 패스를 건네주는 마법의 패싱력은 팬들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2007-2008시즌을 앞두고 호나우디뉴는 작아졌다. 갑자기 몸이 불면서 '배나우디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고, 그는 마법사에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면서 바르셀로나의 '계륵'이 되고 말았다. 이듬해 AC 밀란으로 쫓겨나다시피 둥지를 옮긴 호나우디뉴는 살짝 부활하는 듯했지만, '계륵'의 이미지를 확실히 벗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2011년 고국 브라질 무대를 향해 짐을 싸고 말았다.

# 아드리아누

2000년대 초반 189cm 90kg의 건장한 체구를 갖춘 브라질리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브라질 선수 특유의 개인기를 갖췄고, 파워와 골 결정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가 2001년 이탈리아 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바로 아드리아누였다. 2001-2002시즌 피오렌티나에서 골잡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다음해에 파르마로 이적해 두 시즌 동안 37경기에서 23골을 잡아냈다. 세리에 A가 수비가 매우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예 아드리아누가 기록한 골 수치는 실로 대단했다. 성장세를 보인 아드리아누는 2003-2004시즌 명문 인터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2003-2004시즌 9골, 2004-2005시즌 16골, 2005-2006시즌 12골을 터뜨리면서 주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2006-2007시즌을 앞두고 그는 몰락했다. 음주사건을 일으키면서 구설에 올랐고, 불성실한 태도로 훈련에 임하는 등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자기 관리 실패는 곧바로 부진한 성적으로 이어졌다. 무려 9개월 동안 골 침묵에 허덕이며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파티와 술을 친구 삼으며 점점 더 작아졌다. 참다 못한 인테르 밀란은 아드리아누를 트레이드 카드로 내세웠지만 '사고뭉치'인 그를 원하는 팀은 없었다. 결국 아드리아누는 2008년 이후 브라질과 이탈리아 무대를 옮겨 다니는 '저니맨'이 되고 말았다. 중간에 은퇴까지 선언했다가 번복하면서 '계륵'의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축구가 침체기를 걸었을 때, 많은 독일팬들은 다이슬러에 대한 희망을 품고 축구를 봤다. 그는 정말 특별했다. 경기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꿀 수 있는 마법사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걸출할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했던 독일축구에 다이슬러는 한 줄기 빛으로 비춰졌다. 다이슬러는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를 거쳐 헤르타 베를린에 안착하면서 성장세를 거듭했다.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기대 만큼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슬러는 2002년 독일 최고의 명문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부상을 달고 사는 그였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 했기에 바이에른이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몸이 성한 채로 경기를 뛸 수 없었다. 바이에른의 입장에서는 다이슬러가 정상컨디션의 50%만 유지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결국 그는 수많은 부상에 이어 2003년 우울증까지 겪으면서 더욱 작아졌고, 2007년 27세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바이에른 구단과 독일 축구팬 입장에서 보면, 다이슬러를 '계륵'보다 '희망고문'이었다고 칭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 토마스 로시츠키

로시츠키는 체코를 대표하는 스타다. 15세 대표팀부터 각 급 대표를 거쳤고, 2000년부터 성인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1-2002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입단한 그는 천부적인 플레이메이커로 각광을 받았다. 수준급 드리블 실력과 경기 조율 능력, 패싱력을 두루 겸비하면서 도르트문트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리고 빅 클럽들의 숱한 구애의 손짓을 받은 끝에 2006-2007시즌을 앞두고 아스날의 새 멤버가 됐다. 하지만 '아스날맨' 로시츠키는 기대 이하의 모습에 머물면서 '계륵'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첫 두 시즌 적응기를 거치는가 했지만 부상으로 쓰러져 2008-2009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이후 좀처럼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사미르 나스리 등이 중심을 잡은 아스날의 중원에서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0-2011시즌에는 34경기에 나섰지만 1골 5도움에 그치면서 작아졌다. 파브레가스와 나스리가 떠난 올 시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벤치를 달구는 시간이 더 많은 게 현재 로시츠키의 현실이다. 선발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해 보이고, 그렇다고 기량이 완전히 저하된 것도 아닌 그런 상황. 로시츠키를 '계륵'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 디에구

1985년생인 디에구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무대를 거쳐 2006년 독일로 향했다. 베르더 브레멘 소속으로 맹활약을 펼치면서 스타 탄생을 알렸다. 2006-2007시즌 48경기에서 15골을 잡아낸 그는 단숨에 브레멘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이듬해 41경기 16골, 그 다음해 39경기 22골을 기록하면서 '미들라이커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당연히 그를 원하는 빅클럽들이 무지 많았다. 뜨거운 경쟁 끝에 '디에구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둔 팀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 투린이었다. 유벤투스는 디에구가 파벨 네드베드의 은퇴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예상했다. 등번호를 28번(2+8=10번)으로 배정할 정도로 디에구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디에구 영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독단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팀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잘 될 때는 잘 되지만 안 될 때는 '닌자모드'로 변하면서 경기력의 기복을 보였다. 감독 입장에서는 디에구를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디에구는 한 시즌 만에 유벤투스에서 짐을 쌌고, 볼프스부르크에 새둥지를 틀었다. 그의 장점에 묻혀 있던 '계륵'의 단점이 이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디에구는 볼프스부르크에서 팀 동료와 다툼을 벌이면서 문제를 일으켰고, 감독과 불화설을 겪으면서 '계륵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1년 디에구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부활을 다짐하고 있다.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그라운드의 백조'가 최근 '맨유의 계륵'으로 무너지고 있다. 2010-2011시즌 EPL 득점왕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불가리아 출신의 골잡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이야기다. 베르바토프는 2000년대 초반 바이에르 레버쿠젠에서 간판골잡이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2006년 토튼햄 핫스퍼로 이적하면서 세계적인 골잡이로 우뚝 섰다. 토튼햄에서 2시즌 연속 23골을 터뜨린 그는 2008-2009시즌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새둥지를 틀었다. 막강한 동료들과 함께 그의 골 감각을 더욱 빛났다. 이적 첫 해 14골을 잡아냈고, 이듬해 12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난 시즌 리그에서 20골(시즌 총 21골)을 작렬하면서 당당히 득점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2011-2012시즌이 시작되자 그는 맨유의 주전이 아닌 벤치워머로 추락하고 말았다. 대니 웰벡과 하비에르 '치차리토' 에르난데스에 밀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시즌 중반부로 접어드는 시점까지 리그 골이 하나도 없다. 맨유 입장에서는 활용가치가 많이 떨어진 베르바토프에 대한 이적을 생각해볼 만하다. 하지만 맨유가 바라는 수준의 이적료를 제시하는 구단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 카를로스 테베스

테베스는 최근 '미운 털'이 박히면서 계륵으로 전락한 케이스다. 보카 주니어스와 코린티안스를 거쳐 EPL 무대에 진출한 테베스는 해결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6-2007시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알토란 같은 골들을 뽑아내면서 주목을 받았고, 시즌 종료 후 맨유로 이적했다. 맨유에서도 그는 찬스에서 더 강한 골잡이로 거듭나면서 해결사 본능을 과시했다. 2009-2010시즌 맨유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면 적잖은 논란을 낳았던 그는 실력으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잠재웠다. 두 시즌 연속 20골 이상을 터뜨리면서 맨시티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났다. 하지만 2010-2011시즌이 끝나고 테베스는 맨시티를 떠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맨시티 팬들을 실망시켰다. 남미로의 이적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한데, 이적 마무리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그는 결국 맨시티에 잔류하게 됐다. 이쯤 됐으면, 테베스는 백의종군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후보로 밀린 상황에 불만을 품기 일쑤였으며, 감독의 출전지시를 거부하는 '항명'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국 맨시티 구단은 괘씸죄를 적용해 테베스를 다른 구단에 팔지 않으면서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현재 뛸 곳 없고 갈 곳 없는 테베스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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