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대한민국의 태극낭자군단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00승 달성에 성공했다. 지난 10월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골프장(파 71, 6208야드)에서 펼쳐진 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최나연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태극낭자 통산 100승에 성공했다. 1988년 3월 구옥희가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23년 7개월 만에 100승 고지에 태극기가 꽂혔다. 아울러 99승에서 지독히도 태극낭자들을 괴롭히던 아홉수가 마감되면서 '7전 8기'의 100승 달성이 성공됐다. 미국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100승 고지를 밟은 태극낭자들이다. 태극낭자군단이 LPGA에서 만들어낸 100승의 신화를 되돌아보고 그 의미에 대해서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해봤다.
# 아홉수를 드디어 털어내다!
정말 지긋지긋 했다. 다른 스포츠에만 아홉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골프에도 아홉수가 있었다. 태극낭자들이 100승을 달성하기까지에는 적잖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99승에서 멈춰선 우승 시계는 '7전 8기' 끝에 드디어 다시 재작동 됐다. 멈춰진 시계바늘을 다시 힘차게 돌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얼짱 골퍼' 최나연이었다. 과거 뒷심 부족으로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던 그가 태극낭자의 에이스로서 당당히 100승 달성에 앞장 섰다.
태극낭자들은 지난해까지 통산 98승을 합작했다. 최근 추세를 본다면, 상반기 내에 100승 달성이 유력했다. 하지만 부담감이 컸던 탓인지 우승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전반적인 성적은 좋았지만 우승을 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유소연이 긴 침묵에 마침표를 찍었다.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르면서 환호작약했다. 올 시즌 태극낭자 첫 승을 거두면서 시즌 내 100승 달성 가능성을 드높였다.
우승이 많지는 않았지만 태극낭자들의 상승세는 정말로 거침이 없었다. 톱10에 여러 명을 포함시키는 것은 기본이었다. 100승 달성이 곧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홉수는 생각보다 힘든 장애물이었다. 이후 열린 7개 대회에서 태극낭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상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1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지 직전 5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으니 그 아쉬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즌 막바지가 다가오면서 100승의 영광을 2012년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왔다. 아홉수 징크스를 뛰어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가장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최나연이 가만 있지 않았다. 지난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골프장에서 펼쳐진 LPGA 투어 사임다비 대회에서 우승샷을 폭발했다. 자신의 LPGA 통산 5승째에 태극낭자 100승의 훈장을 아로새기면서 우승 트로피에 진한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 LPGA를 빛낸 태극낭자들
태극낭자들이 통산 100승을 거두기까지 걸린 시간은 23개월 7개월이다. 한국 여자골프의 대모로 통하는 구옥희가 1988년 3월 스타트를 끊었다. 구옥희는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여자골프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떨쳤다. 이후 구옥희에게서 에이스의 바통을 이어받은 고우순이 1990년대 중반에 승수를 보탰다. 일본에서 펼쳐진 LPGA 투어 토레이 재팬퀸스컵에서 1994년과 1995년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세를 드높였다.
구옥희와 고우순이 태극낭자들의 가능성을 엿봤다면, 1990년대 말부터는 박세리를 대표주자로 태극낭자들이 대세로 떠올랐다. 박세리는 1998년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시즌 4승을 거두면서 구옥희와 고우순이 합작한 통산 승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면서 거구의 외국 선수들을 헛스윙 삼진을 돌려세운 박찬호와 함께 IMF 시절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줬다.
박세리를 시작으로 태극낭자들은 LPGA 무대를 조금씩 접수하면서 세력을 더욱 넓혀 나갔다. 박세리가 무려 25승을 달성하면서 2007년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고, 박세리의 오랜 라이벌인 김미현이 8승, 뒤를 이은 박지은과 한희원이 나란히 6승씩을 보태면서 승수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박세리-김미현-박지은-한희원으로 이어진 태극낭자군단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신세대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언론들이 시즌 전 전망에서 태극낭자를 앞에 두고 다른 세력들이 추격하는 구도를 그릴 정도였다.
현재까지 LPGA에서 우승을 거둔 태극낭자들은 총 34명이다. 승수 별로 따지면, 1승 17명, 2승 9명, 3승 1명, 4승 1명, 5승 1명, 6승 2명, 8승 2명, 25승 1명이다. 이 가운데 현역으로 뛰는 선수가 절반을 훌쩍 넘는다. 앞으로 태극낭자들의 통산 승수가 더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되는 이유다.
* 통산 100승의 주인공들
25승 - 박세리
8승 - 김미현/신지애
6승 - 박지은/한희원
5승 - 최나연
4승 - 이선화
3승 - 김인경
2승 - 고우순/박희정/강지민/이미나/장정/지은희/오지영/미셸위/크리스티나 김
1승 - 구옥희/안시현/김주연/강수연/이지영/김주미/임성아/홍진주/김영/박인비/이은정/허미정/송보배/서희경/유선영/유소연/펄신
# 청 야니를 경계하라!
태극낭자들이 감격적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도전정신을 가지고 앞으로 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올 시즌을 돌아 보면, 한 대회에서 톱10의 반 이상을 채우면서도 우승이 나오지 않은 적이 많았다. 객관적인 기량 면에서는 세계 정상급임이 틀림없지만, 승부처에서의 집중력과 마지막 뒷심 등에서 2%가 모자라 우승의 영광을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넘겨주는 경우기 적지 않았다. 태극낭자들이 반드시 풀어내야 할 숙제다.
현재 태극낭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바로 대만의 청 야니다. 1989년생인 그는 태극낭자들과 동일하게 박세리를 롤-모델로 삼았으며, 최근 일취월장한 기량으로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현재 세계랭킹 1위에 당당히 올라 있으며, 올 시즌 7승을 따내면서 개인 타이틀 독식을 예약한 상태다. 태극낭자들을 아홉수에 떨게 만들었던 인물이 바로 다름 아닌 청 야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배짱과 경기 운영 능력이 모두 탁월해 최강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청 야니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태극낭자들이 되새겨야 할 부분은 집중력과 꾸준함이다. 청 야니는 승부처에서 더 강해지는 선수로 유명하다. 태극낭자들이 기술에서 뒤질 것은 없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승부처에서 심장싸움이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태극낭자들은 경기를 잘 치르다가도 막판에 결정을 짓지 못해서 우승을 놓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멘탈 트레이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모든 선수들이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 먹은 대로 매 대회에서 스윙을 완벽하게 하는 선수들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복이 적은 선수가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청 야니는 시즌 7승을 비롯해 시즌 내내 매 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골프여제' 후보 0순위로 각광을 받았던 신지애를 비롯해 다른 선수들이 꾸준함에서 뒤져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청 야니의 꾸준함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 오늘보다 내일이 밝은 '세리 키즈'
한국 스포는 현재 '키즈 열풍'으로 희망찬가를 부르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지성 키즈'가 등장해 축구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고, 김연아의 환상연기에 매료되어 피겨의 길에 접어든 '연아 키즈'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박태환의 세계 제패의 감동을 전달 받아 '태환 키즈'도 급부상 중이다. 이런 '스포츠 키즈'의 원조는 바로 '세리 키즈'다. IMF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박세리의 샷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았던 '세리 키즈'들이 무럭무럭 성장해 현재 LPGA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오름세를 보인 '세리 키즈'는 2008년부터 LPGA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비회원 자격으로 LPGA 무대에 선 신지애가 2008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포함해 3승을 몰아치면서 '세리 키즈'의 광풍이 시작됐다. 이후 박인비, 오지영, 김인영, 최나연 등이 번갈아 가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선수들이 우승을 합작해 나가면서 태극낭자들의 매서움을 확실히 선보였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세리 키즈'가 명실상부한 LPGA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2009년 '세리 키즈'를 중심으로 한 태극낭자들은 무려 12승을 합작하면서 전 세계 골프팬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자고 일어나면 태극낭자들의 LPGA 우승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해에도 태극낭자들은 10승을 합작하면서 2009년의 승승장구가 우연이 아님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세리 키즈'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여자골프의 미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다. 올 시즌 아홉수에 시달리면서 2승에 그치고 있지만, 통산 100승 달성의 영광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될 수 있기에 희망적인 시선이 우세하다. 100승을 기점으로 150승, 더 나아가 200승까지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은 '세리 키즈'가 LPGA 통산 100승을 더 큰 기회의 시작점으로 삼길 바라본다.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