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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1980년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기사로 ‘아시아의 4룡(龍)이 몰려온다.’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4룡은 신흥공업국인 대한민국,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이었다. 그러나 요즘 ‘4룡’이라는 용어가 없어졌다.
이들은 모두 과거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과 번영을 이룬 중진국들로 세계의 부러움을 산 바 있다. 그러나 1997년 영국식민지였던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고 타이완은 저성장으로 돌아서 이제는 중계무역의 거점인 싱가포르와 대한민국 2룡만 남았다.
지난 6월5-8일 3박4일 일정으로 타이완을 다녀왔다. 2009년에 고려대 건설경영대학원 AMP과정 6개월을 함께 했던 원우들 중 7쌍의 부부와 싱글 8명 등 22명이 함께했다. 그간 4,5차례 중국 일본 필리핀 태국 등 함께 다녀왔지만 타이완은 처음이다.
수도 타이뻬이(臺北)와 동쪽 바닷가 화렌(華蓮) 그리고 북동쪽의 양명산(陽明山)국가공원의 노천온천과 야료(野柳)지질공원 등 일반적인 단체관광코스를 밟았다. 강규열 전회장이 센타투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기에 싸고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타이완 방문은 4번째다. 대학졸업 후 유네스코청년원 간사시절인 1980년 겨울 원불교청년회, YWCA 청소년 지도자 등과 유네스코 학생회 임원 등 9명이 타이뻬이와 아리산(阿離山) 청소년시설을 방문한 게 처음이다.
이어 10여년 후인 92년 아시아기자연수 프로그램과 2000년대 초 앰네스티 아시아회의 참석차 왔으나 고산족 마을들을 방문한 것 외엔 타이뻬이에서만 묵었던 셈이다. 거의 20년 만에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본격 관광이었다.
첫날 새벽에 인천공항에 모여 2시간여 비행기를 타니 점심때 도착했다. 공항근처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타이완이 자랑하는 70만점의 소장품이 있는 국립고궁(故宮)박물관으로 직행했다. 3층 건물에 한번에 3-6개월간 6천 여점 밖에 전시를 못하니 100번 이상 와야 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진=야시장 가운데 있는 도교사원 ⓒ데일리매거진
‘고궁’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청나라의 3째 황제인 건륭제(乾隆帝)가 수집한 보물들이 주소장품인 까닭이다.
장개석 전 대만총통이 1931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베이징(北京)에서 조금씩 타이완으로 옮겨 1949년 중국본토에서 모택동에게 패하면서 모두 다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 날은 마침 대만의 세계적 화가 겸 서예가인 장대천(張大千)의 120주기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1층은 건륭제의 소장품 중 유명한 돌삼겹살(肉形石)과 옥으로 만든 배추포기가 전시되고 있었다. 2층에는 각종 부처상과 도자기, 서예 그림, 그리고 3층에는 다양한 옥과 비치등 보석들을 전시했다. 오후 2시30분 입장객수를 보니 1,650명. 하루 2천명이상 입장하리라. 이번에 놀란 것은 6월6일 현충일이라 3일연휴이긴 했지만 관광객중 한국인이 70%이상인 것 같았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3일내내 한국관광객들을 만났다.
▲사진=고궁박물관의 돌삼겹살 설명 ⓒ데일리매거진
고궁박물관을 보고 스린(士林)야시장을 보러가는 길에 충렬사(忠烈社)를 들러 경비의장대 교대의식을 구경했다. 다음날이 우리 현충일이라 단순 구경이 아니라 잠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했다. 스린야시장은 오후 4시께 조금 일찍 들렀다. 대만 올 때 마다 들렀던 사람냄새 나는 우리 재래시장 풍경이다. 선비라는 ‘사림’들이 즐겨 다니던 곳이라 그런지 가운데 도교사원 외에는 큰 느낌이 없었다.
각종 먹거리가 눈길을 끌었는데 입맛이 당기지 않아 모두들 가리비와 바닷가재 치즈구이집에서 타이완비어 한잔씩 하고 샤부샤부 저녁 먹으러 서둘렀다.
2차대전 후 후진국서 선진국대열에 오른 나라는 싱가포르와 한국밖에는 없다고 한다. 2001년 방문했을 때만해도 타이완이 한국보다 1인당 GNP가 조금 높다고 할 때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 타이뻬이는 외적으로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타오유안(桃園)공항에서 내려 타이베이시내를 들어갈 때면 길가 건물들이 전처럼 우중충해 보여 잘사는 나라 같지가 않다. 이번 일행이 건설전문가들이라 그 이유를 알았다. 비가 많이 와 건물외벽에 페인트칠을 못하고 흰색타일을 붙이기 때문에 홈에 때가 많이 끼여 어둡게 보인다는 것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21세기 현재 대한민국, 싱가포르, 홍콩은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중국의 자치시인 홍콩을 한국과 비교하긴 뭣하지만 2018년을 기준으로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우 1인당 GDP(명목)가 4만5천 달러 이상 되는 국제적인 금융허브도시가 됐다.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때인 1995년 OECD에 가입했고 이명박 정부때는 G20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18년 기준 GDP(명목) 세계 11위, 1인당 GDP(명목) 세계 28위 (32,046달러)로 명실동히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앞서가던 타이완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3년을 고비로 한국에게 추월당했다. 인구는 한국이 대만의 2배이기 때문에 경제규모는 그때도 한국이 2배 이상 컸다.
당시 한국의 총 GDP가 6,058억 달러로 세계 11위 수준이었지만 대만의 경제규모는 약 17위~18위로 우리에게 추월당한지 오래됐다. 그러나 당시 선진국들은 한국과 대만은 경제발전 속도가 비슷하고 기술력도 비슷해서 두 나라를 같은 레벨로 취급했다.
양국의 경제발전과정은 비슷했지만 산업구조는 완전 달랐다.
한국은 대기업위주의 중화학공업을 통해 완성품위주의 수출을 지향한 반면,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로 경공업을 발전시켰다. 대만에는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없다.
▲사진=스린야시장 풍경 ⓒ데일리매거진
한국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항제철 등 세계적인 기업이 성장했고 대만은 파운드리 반도체나 PC, 노트북 시장에서 Acer, VIA처럼 부품업체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PC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HP나 Dell 컴백 등 미국기업들의 PC는 대부분 대만에서 OEM형식으로 공급받았다. 한때 대만의 노트북 생산량은 세계생산량의 50%를 넘었고 파운드리 반도체 역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만도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브랜드파워가 없다는 거다.
최근 삼성, 현대, LG, SK, 포스코 등의 브랜드파워가 ‘KOREA’를 능가할 정도인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한국은 미중간의 무역전쟁, 북한의 핵개발 등으로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2만 달러 중진국의 함정을 10여년 만에 겨우 벗어나 지난해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국민들의 기대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이제는 타이완은 경제면에서는 경쟁상대가 안되지만 복지나 교육 등에서 우리보다 평등한 정책을 지향해온 타이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타이베이에서>> 다음으로 군사력을 살펴보면 대만의 군사력은 한국못지않게 상당히 강력하다고생각합니다. 대만은 수십년동안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해야하기 때문에, 경제에서 차지하는 국방비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크죠. 대만의 GDP는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국방비는 약 170억$로, 130억$정도인한국보다 많습니다. 대만의 국방비는 GDP의 약 7%를 차지하죠. (한국은 약 2.7%)육군중심으로 군사력이 발달된 한국과 달리 대만의 경우에는 해,공군 중심으로군사가 발달했기 때문에 질적으로는 상당히 한국보다 앞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군사력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대만의 군사력은 정말로 아무것도 안되는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물론 중국이 이기겠지만 대만또한 앉아서 호락호락 당하고 있을리 없을것이자명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독전갈 전법'이죠.대만은 만약 중국과 전쟁직전까지 상황이 급변하면,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대도시와 핵심군사기지 5곳을 집중 공격한다는 전법을 구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겠다는 말이죠....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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