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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천안삼성SDI |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천안 삼성SDI 사업장 내 토목·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부 하도급 및 재하도급 업체들이 공사대금 미지급을 호소하며 현장 출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불을 이유로 집단 행동에 나선 업체 가운데에는 인테리어 공정을 담당한 ‘시아인테리어’도 포함돼 있으며, 이들은 원도급사인 DL이앤씨(구 대림)와 발주처 측에 미정산금 지급을 촉구하며 실력행사에 나서 집회와 시위를 이어오는 것과 더불어 각 언론사에 하도급업체인 자신들의 불편부당한 억울함을 담은 호소문을 담아 적극적인 제보를 하는 등 본격적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해당 현장의 토목·건축 하도급사인 국토건설㈜이 있다. 국토건설은 삼성SDI 천안 ‘극판 마더라인(M-Line) 신축공사’에 하도급사로 참여해 공사를 사실상 100% 완료했지만, 25억 원의 누적된 미정산과 손실로 인해 부도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국토건설의 경영 위기가 곧바로 다수의 재하도급사와 현장 근로자들의 생계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건설 측에 따르면 해당 공사는 2023년 10월 착공해 올해 중반까지 진행됐으며,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이후 공사 과정에서 복합공정과 추가 공사가 반복되면서 수차례 설계 변경이 이뤄졌지만, 급등한 물가와 인건비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회사 측 주장이다. 특히 설계 변경과 공정 조정 과정에서 추가 투입된 인력·장비·관리비 상당 부분이 정산되지 않아 실질적인 손실이 누적됐다고 한다.
국토건설 관계자는 “원도급사의 지시에 따라 무리한 공정 일정과 추가 작업을 감내해 왔지만, 공사비 현실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며 “미불금이 3개월 이상 누적되면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국토건설과 거래한 다수 재하도급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일부 업체들은 체불 우려 속에 현장으로 몰려와 미정산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공정 압박 구조 속 중소업체 “실투입비조차 못 받아”
-공사 100% 완료 후에도 기성 미지급…연말 자금난에 현장 긴장 고조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개별 현장의 분쟁을 넘어, 구조적인 하도급 관행의 문제를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가 낙찰 구조 속에서 원도급사가 설계 변경과 공정 압박을 하도급사에 전가하고, 손실은 다시 재하도급사와 근로자들에게 떠넘겨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자금 흐름이 막힐 경우, 중소 건설사의 부도는 지역 경제와 고용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국토건설은 수차례에 걸쳐 공문을 통해 추가 공사비와 기성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입된 최소한의 비용에 대한 정산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대기업에게는 크지 않은 금액일 수 있으나, 중소기업에는 존폐를 가르는 문제”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발주처와 원도급사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한 건설법률 전문가는 “하도급법과 공정거래 원칙의 취지는 힘의 불균형 속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며 “분쟁이 장기화될수록 피해는 현장 근로자와 협력업체로 확산되는 만큼, 발주처의 조정과 정부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말은 상생과 책임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시기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의 현장에서 중소 협력업체들이 거리로 나와 절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공사가 완료된 현장에서 남은 것은 콘크리트와 철골만이 아니라, 공정한 정산과 신뢰라는 토대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천안 삼성SDI 현장의 갈등이 대립과 파국이 아닌, 원청·하도급·재하도급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해법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정부와 산업계의 책임 있는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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