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흔히들 하계 올림픽, 축구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라고 한다. 규모와 열기, 그리고 관심도 면에서 최고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2002한일월드컵을 최고의 대회로 치러냈다. 그리고 2011년 늦여름 달구벌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인 스포츠 축제로 만들어냈다. 이번 스포츠 초대석의 초대손님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환하게 빛낸 인물이다. 1990년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제패했던 '중거리 육상황제' 이진일이 그 주인공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불운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뻗어나가지는 못했던 그가 후배들을 이끌고 대구세계육상대회에서 새로운 꿈을 펼쳤다. 한국육상 역사상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진일 국가대표팀 코치를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800미터의 사나이' 이진일
이진일은 한국육상의 '중거리 황제'로 통했다. 1990년대 800미터에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 세계 수준까지 근접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4년 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800미터 2연패를 달성했다. 이진일이 작성한 1분 44초 14의 800미터 한국기록은 17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아쉬운 현실이지만, 돌려놓고 보면 그 만큼 이진일이 대단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제는 코치로서 후배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진일에게 기분 좋은 800미터의 추억을 먼저 꺼냈더니 의외로 손사래부터 쳤다. "(선수 시절)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라며 자세를 낮추는 그였다.
아시아를 제패했던 원동력에 대해서 물었다. 이진일 코치는 또 한 번 겸손모드를 발동했다. "당시 중거리 3총사가 있었습니다. 김용환 선배(현 고양시청 감독), 후배 김순형(현 대구체육고등학교 코치)과 함께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당겨주면서 시나브로 기록이 좋아졌습니다. 장점과 단점을 서로 짚어주고 보완하면서 함께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두 사람에게 매우 감사해지네요." 8년 동안 자신과 함께 대표팀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냈던 선후배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이진일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800미터 2연패를 이루고 난 뒤 미련 없이 현역에서 은퇴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5세였다. 아시아 최고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세계 무대에 도전할 저력이 충분하게 열려 있었기에 은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이래저래 은퇴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사실 선수 생활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이 생기면서 본의 아니게 좀 더 선수 생활을 하게 된 거죠.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미련 없이 은퇴했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이진일은 못 다했던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2004년 지도자로서 대표팀에 합류해 후배들을 만나게 됐다.
# 감기약과 약물파동
이진일은 '비운의 육상스타'라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시기에 도핑 테스트에 걸려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이진일 입장에서는 당시 사건이 두고두고 아쉬울 법하다. 약물복용으로 도핑 테스트에 적발된 것이 아니었기에 억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기약을 무심코 복용한 것이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세계 무대를 노크하던 그는 1995년 '감기약'의 덫에 걸리면서 2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받게 됐다. 자신의 최고 목표로 여기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출전은 물론이고, 선수 생명 최대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기량이 정점에 달하던 순간에 찾아온 2년간의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억에 대해서 이진일 코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많이 괴로웠습니다. 애틀랜타올림픽 자체를 보기 싫을 정도였으니까요.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멋진 도전을 펼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그 꿈이 날아갔죠." 이진일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해 경험을 쌓았다. 모든 면에서 세계 수준에는 한참 뒤져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참가에 의의를 뒀다. 그리고 성장세를 거듭하면서 애틀랜타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약물파동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지자 이진일 코치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요"라는 의외의 말을 건넸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한국육상 전체가 보약과 감기약 등 취식물에 대한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게 됐고, 자신은 아시안게임 2연패라는 목표를 다시 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마도 애틀랜타올림픽에 참가했다면, 그때 생각처럼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겠지요.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후회 없는 정면승부를 멋지게 펼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애틀랜타올림픽에 나갔다면,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루지는 못했겠죠." 그의 말 속에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해 나가는 모습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 꾸준히 달리는 '중거리 지도자'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지만 한국육상의 수준은 세계 톱 클래스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수발굴 시스템부터 시작해 훈련 방법과 선수 관리까지 아직은 세계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대구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의 잔치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이진일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들의 실력이 후위그룹인 건 사실입니다. 육상이라는 종목은 이변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죠." 그는 현재 대표팀 코치로서 한국육상의 냉정한 현실을 되짚었다.
이어서 이진일 코치는 현재 실력으로 눈에 띄는 성적을 낼 수는 없지만, 팬들의 눈길 끄는 레이스는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대구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펼쳐지는 세계대회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다짐으로 땀방울을 흘렸습니다.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 속에 흥미로운 게임을 펼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스 초반에라도 앞서나가는 모습을 택했습니다. 결승선이 100~200미터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라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내비쳤다. 현재 실력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을 이겨낼 수 없지만, 대회 준비와 투지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이진일 코치의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한국육상의 현주소를 잘 알고 있는 이진일 코치이기에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곧바로 '시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전반적으로 육상에 대한 투자는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투자 부분이 더욱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육상은 결코 단기간에 기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종목이 아닙니다. 투자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갑자기 기록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도자와 선수들 모두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세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전적인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간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선수 시절 중거리 황제였던 그다운 지적이었다. 지도자가 되어서도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달려나가고 있는 '중거리 지도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 생각하는 육상의 중요성
지도자가 되어서 되돌아보는 '선수 이진일'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조금은 엉뚱한 질문에 이진일 코치는 "사실 제가 볼 때 저의 선수 시절의 실력은 평범했다고 봅니다"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특별하지 않은 실력으로 어떻게 아시아 최고의 선수까지 올라섰는가?"라고 다시 묻자 그는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제 어디서나 더욱 빨리 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습니다. 트랙에서 뛰고 있지 않을 때도 머리는 항상 뛰고 있었죠.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뛸 수 있느냐를 항상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레이스에 대한 전략과 승부처에서의 대처 요령, 그리고 경기를 잘 했을 때와 잘 못 했을 때의 상황 등을 끊임없이 생각했죠." 그의 말을 들으니, '영리한 선수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진리가 새삼 떠올랐다.
이진일 코치는 말을 이어갔다. 후배들에게 '생각하는 육상의 중요성'을 꼭 일깨워주고 싶다는 의견을 재차 나타냈다. 그는 "선수 시절 세계적인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장면을 비디오로 수도 없이 돌려 봤습니다. 처음에는 느끼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유심히 지켜보니 그들이 잘 하는 이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뛰는 듯 평범했지만, 뭔가가 다르다는 걸 느꼈을 때 매우 뿌듯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장점을 눈으로 흡수하고 발로 실천했기에 평범한 기량을 지녔던 제가 선수 시절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코치로서 후배들에게 '생각하는 육상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진일 코치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스포츠에서 타고난 선수는 노력하는 선수에게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선수는 즐기는 선수에게 이길 수 없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이진일 코치는 선수 시절 부단한 노력으로 타고난 선수들을 잇따라 꺾었고, 항상 즐기는 자세로 '생각하는 육상'을 실천하면서 노력하는 선수들 또한 뛰어넘었다. 비록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발과 머리가 함께 뛰면서 그들을 맹렬히 뒤쫓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선수 시절 경험했던 '즐기고 생각하는 육상'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있다.
# 대구의 영광을 계속해서!
선수 시절 아시안게임 2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감기약 약물파동'으로 적잖은 곤혹을 치르며 '비운의 육상스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진일. 선수로서 성공하기는 했지만, 불운으로 더 뻗어나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아쉬움 섞인 반응을 보이며 "솔직히 아쉽지 않은가?"라고 묻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성숙한 답변을 내놓는 그다. "선수 시절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선수로서 항상 최선을 다했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기 때문이죠. 지도자가 되어서도 선수 시절처럼 움직이려고 합니다. 중거리를 뛰듯이 조금씩 전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이진일 코치는 "후배들을 통해 저의 꿈을 이루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이 17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제가 조련한 후배 중에서 꼭 제 기록을 깨는 선수가 나올 겁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어 "제 기록을 깬 뒤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후배가 머지않아 등장할 겁니다. 선수 시절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해 세계적인 선수 7명과 나란히 서서 메달을 다투는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제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후배들과 함께 이루는 것이 이제 새로운 목표가 됐습니다. 제 기록을 깨뜨릴 그 녀석이 제가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해 줄 겁니다"라며 후배들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시했다.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면서 이진일 코치는 "대구세계선수권대회가 한국육상 발전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지만, 발전한 뒤에 돌아보면 세계 최고의 무대가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그랬고 2002한일월드컵도 그랬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성공적인 대회를 만들어냈고, 대회가 지난 뒤에 한국 스포츠는 이전보다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번 대구세계선수권대회 역시 성공적인 개최와 함께 한국육상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치가 드높다. 이진일 코치가 바라는 대로, 너무 성급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느리지도 않게 페이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는 한국육상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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