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은행원 5000명 "월급 160만원...말이 됩니까"

배정전 / 기사승인 : 2011-08-31 13:27:48
  • -
  • +
  • 인쇄
임금 2008년 수준으로 원상 복귀 안되면 9월 총 파업 예고

신임행원.jpg


[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체육관에 3년차가 안 된 신입 은행원 2500여명이 모였다. 금융노조가 주최한 '임금투쟁 승리를 위한 신입직원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요구는 2009년부터 20% 이상 깎았던 연봉을 원래 수준으로 높여달라는 것. 집회에 참가했던 한 시중은행 직원은 "세금, 국민연금 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한 달에 160만원"이라며 "이러려고 대학원까지 마친 게 아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은행연합회 산하 금융사용자협의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민간 시중은행이 새로 뽑은 인원은 5009명. 올해 총 10조원이 넘는 순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전체 시중은행들이 5000여명의 연봉을 900만원가량 올려주는 것은 사실 큰 부담이 아니다.

그런데도 금융노조는 지난 7월 21일 "올해 신입직원 임금이 원상 복귀되지 않으면 9월 중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해 신입행원 처우 개선을 올해 임금협상의 최우선 목표로 올렸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1일 "신입행원의 연봉을 즉시 2008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안 되고, 일반 은행원들의 연봉 인상폭을 줄여 이를 재원으로 신입행원의 연봉을 3~5년에 걸쳐 올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침을 내놨다.

금융계에선 신입행원 연봉을 2008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문제에 대한 이런 움직임 속에 "우리나라 은행원들이 일하는 만큼 연봉을 받는가"라는 정부와 은행권의 논쟁이 숨어 있다고 평가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신입행원 연봉 논란이지만, 속은 은행원 연봉 거품에 대한 정부와 은행의 신경전이라는 얘기다.

◆강성 노조와 경영진의 타협이 낳은 신입직원 연봉 삭감

신입 은행원들의 연봉이 깎인 것은 2009년이다. 2009년 2월 정부는 비상경제 대책회의를 통해 '대졸 초임 인하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독려했다. 이 방침은 같은 해 6월 국책은행과 금융기관에 직접 전달됐고, 은행별 노조와 경영진도 이를 토대로 임금협상에 임했다.

당시 시중은행 경영진은 일반 은행원에 대한 임금 삭감과 자진 반납도 강력히 요구했었다. 은행 노조들은 기존 직원들의 임금 삭감을 최소화하는 대신 아직 입사도 안 한 신입직원 초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은행 경영진 입장에서도 대졸 초임 삭감은 노조와 큰 갈등 없이 얻어낼 수 있는 '성과'였다.

은행이 실질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내려면 연봉이 많은 기존 직원들의 연봉에 칼을 대야 하지만, 유달리 노조의 입김이 센 국내 은행들은 힘없는 신입직원들의 연봉을 1인당 적게는 8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이나 깎는 것으로 이런 작업을 대체한 것이다.

신입직원 임금 삭감 결과, 현재 시중은행 신입 직원 연봉은 2800만~3100만원 선으로 국내 중견기업 수준으로 떨어졌다.

◆선진국보다 늦게, 변칙적으로 진행된 고액 연봉 논란

은행원의 고액 연봉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선 최우선 순위의 개혁 대상이었다.

글로벌 위기 전까지 시장 자율을 중시했던 영국은 금융위기 후 은행에 막대한 세금(구제금융)이 투입되면서 은행원들의 고액 연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여론의 압력을 의식한 영국 정부는 지난해 연말 보너스를 2만5000파운드 이상 받은 은행원들에게 50%의 고액 세금을 부과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와 로이즈뱅킹은 올해 보너스 가운데 현금 지급액을 1인당 2000파운드 이하로 억제하기로 했다.

영국은행들은 또 2012년부터 골드만삭스, UBS 등과 같은 외국계 은행의 영국 지사를 비롯한 모든 대형 은행의 고액 경영진의 연봉을 공개하기로 영국 재무부와 합의했다.

미국의 경우 2009년 은행 임원들의 보너스 지급시점을 3~5년간 늦추는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위기를 만드는 데 은행 임직원에 대한 잘못된 보상구조가 원인이 됐다"(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보너스 지급 기준을 단기 성과보다 장기 성과에 맞춰 지급하기로 기준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국내 은행의 고액 연봉 문제는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부각됐다. 결과도 변칙적으로 신입행원을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잠시 삭감하거나 동결했던 기존 은행 임직원 연봉은 이미 2010년부터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요즘 국내 은행권에선 오히려 "금융위기 후 최근 3년간 삭감과 동결이 반복돼 큰 폭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선진국과는 정반대로 논의가 흘러가는 셈이다.

◆정부와 은행권, 고액연봉 문제 시각차 뚜렷

신입행원 연봉을 올해부터 2008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이미 은행 경영진과 금융 노조는 합의를 본 상태다. 신입행원의 불만이 심상치 않은 데다 연봉 차별이 근로기준법상 차별금지 원칙에 위배되고, 노노(勞勞) 갈등을 부추길 소지가 많다는 게 노사 양측의 공통된 논리다. 하지만 이런 은행권 노사의 '공감'은 아직 이행이 안 되고 있다. 정부가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1일 "한 번에 신입행원 임금 원상 복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기존 직원의 임금 인상률을 낮추고 2009년 이후 신입직원의 임금인상률은 높여 차이를 줄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신입행원 연봉을 기존 직원 수준에 맞추지 말고 기존 직원들의 연봉 인상폭을 줄여 그 재원으로 연봉 격차를 메우라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 부행장은 "신입행원 연봉에 대한 지침이지만 이걸 실행하려면 기존 직원들 연봉을 크게 올리는 게 불가능해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주요기사

+

칼럼

+

스포츠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