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최근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더블딥(경기가 잠시 회복했다가 다시 침체하는 현상) 우려와 유럽 채무위기 확산으로 국내 금융권이 출렁거리면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하반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각종 선대책을 내놨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지나친 우려”라며 폄훼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달 들어 단 4일 만에 코스피지수가 228포인트 급락하면서 불신은 신뢰로 바뀌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들어 부쩍 외환유동성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5일 긴급 소집한 간부회의에서는 “물가가 올라도 당장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환유동성 문제는 (잘못되면)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는 “우리 외환부문의 관리를 각별하게 사전적으로 대비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1일 금융위 출입기자단 세미나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대외환경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여 큰 시스템 위기에 맞서 외화부채를 (들여다)보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올해는 외환건전성 문제를 1번으로 하겠다”(7월23일 봉사활동)고 덧붙였다. 사흘 뒤인 지난달 26일에는 “은행들의 외환유동성 확보를 각별히 챙기라”고 주문했다.
동시에 12개 주요 은행을 참여시켜 금융회사 외환유동성 특별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고, 이들 은행에 대해 외화자금조달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위기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검증) 기준도 대폭 높였다.
금융권에서는 “과도한 관리”라는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김 위원장은 단호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들이 아무리 ‘우리는 괜찮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말라. 내가 세 번이나 속았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데, 그런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자신 있게 외환유동성 관리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앞선 경험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을, 2003년 카드채 사태 때는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1국장을 각각 맡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2007년 재정경제부 1차관 시절에 은행의 외환유동성을 직접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후배들에게 미안해했다는 후문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다른 고위 관료와 달리 국내 주요 금융위기를 3차례 모두 현장에서 겪은 유일한 인물”이라며 “외환만 잘 관리하면 금융불안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외환부문 관리 구상은 올해 초 마련됐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전 가진 업무보고에서 대뜸 “통계자료를 갖고 오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별도의 보고를 안들어도 ‘통계’만 보면 무슨 대책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 공식통계를 들여다본 김 위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만 가계부채가 늘었다”며 “최종적으로 외환 관리지만 그에 앞서 암초들을 제거해야겠다”고 말했다.
그후 10일 만에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됐고, 2월 10조원대의 7개 저축은행이 추가 영업정지됐다. 4월 가계 대책의 일환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번복했다. 5월 카드 대책, 6월 가계 대책이 줄줄이 나왔다. 어느 정도 정지 작업이 이뤄졌다고 생각한 지난달부터 외환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정은보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일련의 금융위 대책은 연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며 “세계 경기 우려가 만만치 않지만 미리 예측했던 만큼 침착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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