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KBS는 정령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감'을 포기한 것일까.
KBS 장 모 기자의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이 불거진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에 가려진 채 숱한 의혹들만 넘쳐나고 있다. 지난달 24일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KBS 수신료 인상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 최고의원들의 비공개회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도청의혹'의 불씨를 당겼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도청의혹' 사건에 연루된 KBS 말단 장모 기자는 1차 진술에 헛점이 드러나면서 24일 두번째 소환부터 단순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 기자가 1차 조사에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한 날인) 지난달 24일 다른 취재 일정 때문에 국회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장 기자의 수·발신 내역 및 통화위치를 추적하고 국회 CCTV 조회, 차량 출입일지 조사 등을 통해 장 기자가 24일 국회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경찰은 말단인 장 기자가 23일부터 26일까지 사흘 동안 KBS 정치부 보고 라인과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을 파악했다. 장 기자의 경력에 비춰보면 간부급 인사들과 통화일이 적은데 이 시기에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는 점에서 KBS 간부급 인사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장 기자가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지난달 27일 택시에 놓고 내렸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두번째 소환조사(24일)에서 경찰의 추궁에 장 기자는 "당시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택시에서 잃어버렸는지 술집에서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신뢰가 생명인 언론사, 그것도 도덕적 엄격함이 요구되는 공영방송이 연루된 이번 '도청의혹 파문'에 대처하는 KBS 경영진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다. '도청의혹'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파악에 나서야함에도 KBS는 진상조사는커녕 안팎의 비판 여론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남무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도청의혹에 휘말린 사상 초유의 사태에 KBS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김인규 사장을 비롯 경영진들이 내놓은 공식입장은 없다고 봐야 옳다. 경영진 대신 홍보실과 보도본부 그리고 입사 4년차의 장 기자만이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대응하겠다"는 말뿐이다. 비겁한 변명이다.
비겁한 경영진의 태도에 25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전날 사측이 "KBS는 특정 기자와 관련된 근거 없는 의혹이 조속히 해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힌 것에 대해 회사의 문제를 일개 기자에게 뒤집어 씌우며 선 긋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KBS 역사상 이렇게 비겁하고 무능했던 사장과 경영진이 있었는지 한 번 따져보고 싶다"고 개탄했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마지막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서는 의혹을 백일하에 밝히며 재발 방지에 나서겠다고 밝히는 것뿐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지난 12~14일 일본에서 열리는 '뮤직뱅크' 녹화현장에 동행하고 직원가족 수영대회(22일)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한가한' 행보를 보였다.
결국 KBS 기자들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2000년 이후 입사한 기자 166명은 지난 21일 성명을 발표하고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KBS가 내놓은 해명은 참으로 옹색함을 넘어 어처구니 없을 정도"라고 탄식하며 김인규 사장과 고대영 보도본부장에게 직책을 걸고 도청 여부에 관해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29기 이하 PD 148명도 25일 성명을 내고 김 사장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김인규 사장과 KBS 경영진은 국민 앞에 도청 의혹 해소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30년 묵은 숙원인 수신료 인상은 커녕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만큼 여론이 험악하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은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의 책임있는 모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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