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벤츠 등 유럽 자동차들이 한-EU FTA 발효에 따라 가격인하 대열에 합류했지만 같은 유럽차인 폭스바겐만 나 홀로 가격인하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가격인하 폭이나 시점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어 자칫 차값이 인하된 것으로 소비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이달 1일 선적된 차량이 국내에 들어오는 9~10월께 FTA 발효에 따른 인하 폭을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만 번복하고 있다. 인하 폭에 대해서도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9일 폭스바겐 관계자는 "1일 선적분부터 관세인하가 적용되기 때문에 이르면 9월말이나 구체적인 인하폭이 결정될 예정"이라며 "재고가 있는 차량은 지금 사도 원래 가격대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이해하기 힘든 가격 정책은 타 유럽 자동차 업체와 상반된다. 일부 유럽차 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돌리기 위해 FTA 인하 전에 가격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미 볼보는 지난 5월20일 차값을 최대 112만원 인하했고, 푸조 역시 같은 달 25일 출시한 세단 508의 가격을 관세 인하분 만큼 내려 판매하고 있다. 벤츠도 지난달 3일부터 차값을 평균 1.3% 인하해 최고 540만원까지 가격을 내렸다.
◇모두 인하해도 폭스바겐은 '마이웨이'
중요한 것은 이들 업체는 7월1일 FTA 발효 전에 가격을 내렸다는 점이다. 재고 물량도 소비자를 위해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며 가격을 내려 팔고 있다.
다른 업체들도 7월1일을 기해 가격을 내렸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도 FTA 발효 시점에 맞춰 전 차종 가격을 0.7~1.4% 인하했다. 포르쉐도 평균 2.6%, 최고 550만원 인하했고 유럽에서 생산된 부품까지 평균 3.5% 내렸다.
아우디도 평균 1.4%(50만원~370만원) 인하해 판매하고 있다. 재고 물량 역시 값을 내려 팔고 있다. 벤틀리도 평균 1.72% 인하해 최고 900만원까지 내렸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요지부동이다. 7월 선적분 차량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점에 가격 인하 폭 등을 검토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사실상 한-EU FTA 체결로 인한 관세 인하 혜택을 독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를 미루고, 재고 물량도 제값 받는 것은)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지만 고객이 보기에는 부정적 인상을 받게 된다"며 "고객들에게 현재의 가격 정책에 대해 확실하게 알리지 않은 만큼 고객을 기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격인하를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자 이익을 고객에게 돌리겠다는 뜻"이라며 "고객들은 1일부터 가격이 인하됐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얼마 안 되는 이익까지 챙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7월 선적분에 대해 관세 인하폭만큼 값을 내리는 것은 확정된 것이지만 내부적으로 9~10월께 선적 차량이 도착하는 시점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결정해 지금은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과 전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이같은 가격 정책을 알리고 있어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은 아니다. 수요와 가격을 모두 따져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 정책을 펴고 있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박동훈(사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역시 지난 4일 뉴 투아렉 출시행사에서 "FTA 발효로 골프 가격을 7월1일 선적분부터 30~40만원 인하하기로 했다"며 "마진을 크게 남기지 않고 있다. FTA로 인한 차값 인하는 골프만 해당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가격 정책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지난 4일 출시한 뉴 투아렉의 경우 관세 인하분을 적용해 기존 차량보다 800만원 올렸다. 관세 인하분을 빼면 1000만원 가량 올린 셈이다. 5월 출시한 제타 역시 170만원을 인상했다.
이와 달리 BMW코리아는 지난 2월 신형 X3의 가격을 종전보다 160만원 가량 낮췄고, 벤츠코리아도 지난 6월 풀 체인지 수준의 신형 C클래스를 최고 80만원 가량 내렸다. 옵션이나 연비, 출력이 개선된 모델임에도 가격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폭스바겐 관계자는 "뉴 투아렉은 예전 모델과 달라 순수비교는 어렵고, 제타는 브라질에서 생산돼 관세인하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관세인하 폭과 여러 가지옵션 등을 검토해 가격을 책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가격 안 내리는 이유, 잘 팔려서?
폭스바겐코리아가 타 브랜드와 달리 관세 인하분을 차값에 반영하지 않는 이유는 판매량과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높은 연비와 탄탄한 주행 성능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골프와 신형 제타는 3~5개월가량 기다려야 차를 인도받을 수 있다. 대기 물량만 제타가 800대, 골프가 300대 수준이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상황이라 쉽사리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유혹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 폭스바겐 딜러는 "골프나 신형 제타의 대기 수요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관세가 인하됐다고 곧바로 가격을 내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관세 인하 폭 만큼 값을 내리지 않으면 회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수입차는 17%의 관세가 붙는다. FTA로 관세가 인하됐으니 수입차 업체는 그만큼 세금을 덜 내게 된다. 또 덜 내는 세금을 소비자들에게 돌리지 않고 기존 가격대로 팔면 수익이 늘어난다.
폭스바겐의 경우 타 업체와 달리 7월1일 시점부터 관세 인하폭을 적용해 차를 팔지 않고 있다. 당연히 소비자들에게 돌릴 수 있는 관세 인하분을 모두 챙기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적극적으로 이같은 가격정책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어서 자칫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1만대를 팔았던 폭스바겐은 올해 상반기에만 6000대 이상 팔며 한국 진출 이후 역대 최고의 판매 성적을 올렸다. 수입차 업계 판매 순위도 BMW와 벤츠에 이어 3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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