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권도열 기자]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를 일군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남은 유산이 하나도 없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일군 세계적인 철강회사 포스코는 1968년 4월1일 설립됐다. 그는 41세 나이에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철강인으로 인생을 시작했다.
포스코는 1988년 6월10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고 3만8058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2007년 10월에는 최고점인 76만5000원을 기록했다. 지난 13일 종가는 38만9500원으로 시초가와 비교하면 10배가 넘게 성장한 셈이다.
올해 3분기 누적 연결 조강 생산량은 세계 전체 물량의 4.5%에 해당하는 2900만t으로 매출액 50조 2000억원 영업이익 4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의 유족 측은 그가 개인 명의로 남긴 재산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포스코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개인적인 부는 축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유족 측 대변인을 맡은 김명전 삼정KPMG 부회장은 박 회장은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재산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라며 "본인 명의의 집도 없고 주식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제철소 창업 당시부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라며면서 "큰딸의 집에서 살면서 생활비도 자제들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전했다.
거물 경제인이자 정치에도 몸담으면서 왜 개인적으로 부를 축척하지 않았을까. 고인은 평소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다. 1974년 가을 관세법 위반혐의로 가택수색이 진행돼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 장롱에는 이불과 옷이 전부였으며 금고에는 집문서와 패물 몇 가지, 해외출장의 흔적으로 남은 푼돈만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일본 미쓰비시가 포항제철이 일류 철강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사의 설비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박 명예회장에게 선물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한 바 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미쓰비시로 부터 '해운회사를 설립하면 미쓰비시은행이 돈을 출자해 화물선을 건조하고 화물 알선도 책임지겠으니 그 수익금을 전액 박 명예회장이 관리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이 돈을 포항공대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수익금 전액을 장학재단에 들어가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명예회장은 '화물선 건조자금은 미쓰비시은행이 좋은 조건으로 융자하고 융자금의 95%를 상환할 때까지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겨우 50억원의 포항제철 자금을 들여 거양해운을 만들었다.
이후 거양해운의 수익금은 포항공대로 들어갔다. '장기융자 95% 상환' 조건은 자신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이를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박 명예회장은 부에 욕심이 없어 타계 직전에도 병원비를 조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아왔다.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