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2017년, 광복절 72년에도 아직 끝내지 못한 친일파 청산 [이미지/일그러진-태극기 ⓒ데일리매거진]
[데일리매거진=이재만 기자] 2017년 광복절 72주년을 맞아 일제의 무단통치가 이뤄진 1910년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까지로 일제강점기로 잔혹한 36년 동안을 우리의 젊은 엘리트들은 자신의 운명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일부의 애국인들은 잃어버린 나라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독립운동에 나서는 일로 이는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만주나 미국등 타국에서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 이었다.
고난의 길로 들어서 광복군에 투신한 고(故) 장준하 전 사상계 사장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 이었고 그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애국 청년들과 국민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이름없이 사라져 갔던 그런분들이 있었다.
이와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기회주의 적이고 자신 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기를 선택했던 일제의 앞잡이 길을 걸었던 이들의 삶도 있었다.
이들은 침략자인 일본의 편에 서 같은 민족인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배를 채워가는 기생충과도 같은 삶을 선택하면서 출세와 영달이 보장된 매국의 길을 걸어 왔다.
대표적 인물로 조선인 의병 소탕과 토벌로 '탄압'과 '학살'에 앞정 섰 던 만주국의 장교 민족문제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만주국군 중위라 기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의 괴뢰국(꼭두각시 나라) 만주국의 군관으로 '한번 죽음으로서 충성한다(一死以御奉公 朴正熙)' 며 독립군을 때려 잡는데 앞장서 일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등이 대표적 진일 부역자 들이다.
이렇듯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자들을 핍박하던 이들이 독립이 되자 그공을 가로 채 광복후에는 자신들이 애국지사로 변신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로 재계에는 3.1절, 광복절 등 일제시대 우리 선조들의 민족정신을 기리는 국경일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몇몇 기업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장수기업으로 불리며 오랜 시간 국가 경제 성장에 이바지 한 공로를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과거에 벌인 ‘친일행각’으로 ‘친일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의 친일 행각이‘일제의 압력에 의해 어쩔수 없는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주권을 뺏긴 국가의 자주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선조들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항변은 그저 궁색한 변명으로 비쳐지고 있다.
당연히 36년 만에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 목숨 바쳐 독립을 외치던 그들이 영광의 첫번째 길에 사람들이 주역이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그와는 거리가 먼 반대의 길로 흘렀다.
독립투사들은 홀대 받고, 친일파는 득세했다. 정의가 거꾸로 가는 상황은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현실이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로 박쥐같은 삶의 인간들도 있었다.
▲사진/이미지=일그러진-태극기(上)와 유한양행 홈페이지(下) 인포그래픽 ⓒ데일리매거진]
오늘날 이런 가운데 신분세탁의 효과인지는 모르나 국민들의 눈을 속이며 민족기업·애국기업 호칭이 따라 다니는 유한양행이 있다.
2017년 8월 대한민국에 애국애족 기업으로 널리 얼려진 유한양행이 1945년 8.15광복을 몇년 앞 둔 시점에서 일본군에 비행기 제작비를 헌납 한 것은 이미 알려진 것으로 그리 놀랍지도 않으나 이들의 행적을 다시금 돌아 보면 일제 당시 유한양행 사장이었던 유명한 씨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11월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을 올렸다. 왜일까?
친일 인명사전을 살펴보면 유명한 전 사장은 유한양행의 창업주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일한 박사의 친동생이다.
1908년 평안 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유명한 전 사장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1년 12월 유한양행주식회사의 사장에 취임했다.
유명한 전사장은 취임직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한데 이어 홍콩을 함락 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종로경찰서를 통해 '유한 애국기' 1대의 제작비 당시의 값으로 5만3000원을 기탁 일본 육군에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파의 기준으로 삼는 '국방금품 헌납자'에 해당 되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을 돕기 위해 1만원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자'를 친일파로 분류하고 있다.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한양행 측 한 관계자는 이번사안에 대하여 대표성을 가지고 설명할수는 없으나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어 해당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에 유한양행은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의 독립운동으로 "적성(敵性) 기업으로 낙인 찍혀 온갖 탄압을 받기도 했다"면서 공과를 따지는 것은 아니나 "유명한 전 사장이 일본국에 비행기 제작비를 헌납한 것은 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오늘날 친일기업으로 치부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일부 억울한 측면도 있다"라고 유한양행의 한 관계자는 해명했다.
실제 일본은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와 기업명인 '양행(洋行)을 문제 삼아 유한양행을 미국계 회사로 낙인 찍고 핍박을 가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당시 일본은 진주만 공습 직후 간부사원 전원을 종로경찰서에 연행하기도 했으며, 5년여에 걸친 혹독한 세무조사로 끊임없이 회사의 목줄을 조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형인 유일한 박사가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국했다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미국에 발을 묶인 상태에서도 열정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것에 비교했을때,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동생인 유명한 전 사장의 친일 행위는 비록 회사를 존속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할지라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우며 유한양행의 이미지에도 먹칠을 한 셈이다.
한편 유명한 전 사장 외에 친일인명 사전에 수록된 기업인은 두산그룹 빅승직 창업주, 삼양그룹 김연수 창업주, 화신백화점 박흥식 창업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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