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안철수 현상'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월26일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2개월 동안 정치권은 격랑에 휩싸였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단숨에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대권 주자로 부상했고,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은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현상'이 일시적인 바람이라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10·26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비정치권 인사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박 당선자의 선거승리는 '안철수 현상'이 정치 현장에서 '안철수 효과'로 나타난 첫 사례가 됐다. 이는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대한 퇴출을 명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 당선자는 이번 선거를 통해 기성 정치에 대안을 제시하는 리더로서의 입지도 확고하게 다졌다. 박 당선자와 같은 비정치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새로 개편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안철수 현상'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면서 안 원장의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는 더욱 커질 예정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선거 문화 전반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박 후보는 민주당과의 경선방식 협상에선 득실을 따지지 않은 통큰 양보로 야권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단일화 이후에는 펀드를 통해 선거자금을 전액 모금하면서 선거에는 돈이 든다는 상식을 깨뜨렸다.
선거과정에서는 한나라당의 검증 공세에 일일이 맞대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유세차와 선거운동을 동원한 시끄러운 유세도 이번 선거에선 보기 힘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선거 운동은 이제 전통적인 선거 유세와 맞먹는 파괴력를 갖게 됐다는 것이 좀 더 명확해졌다.
재보선 투표율은 매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SNS를 통한 투표 독려행위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10% 이상 높아졌다.
특히 20~30대의 투표율이 증가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의사표현시가 현실적인 정치 행위에 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기성 정치권은 어떻게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텃밭인 서울에서 '선거의 여왕'인 박근혜 전 대표까지 나섰음에도 패배를 맛본 한나라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도 웃을 수 만은 없는 처지다.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규모가 큰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한 점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민주당은 이번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다음 스텝에 있어서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민주당 중심으로 가져가기는 어려워지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치권 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의 문턱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시민 조직'이 선거에서 '정치 조직'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게 입증됐고, 각 당이 정치권 외곽에서 새로운 인물을 수혈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