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열풍...대한민국은 분노의 '도가니'

배정전 / 기사승인 : 2011-09-29 1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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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jpg[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영화 <도가니>(사진)의 시작은 미약했다. 인기 작가 공지영씨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었지만,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상업영화로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내용은 어두웠고, 스타 배우나 감독도 없었다. 투자·배급사 내부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다. ‘15세 관람가’를 신청했지만, 흥행에 불리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흥행 전망은 밝지 않았다. | 관련기사 2·3면

언론시사회 직후 ‘잘 만든 영화’라는 소문이 퍼졌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의 호평이 잇달았다. 개봉 전 예매점유율 1위, 22일 개봉 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5일 만에 1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방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취재한 소설, 그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분노의 도가니’에 빠졌다. 성폭행 사건이 핵심이었지만, 경찰의 부패, 공무원의 무사안일, 종교집단의 광기, 법의 무능이 주변에 똬리를 튼 영화였다.

황동혁 감독은 “사회를 고발하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한 관객은 분노했고 시민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28일 오후 8시 현재 5만여명이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재조사를 요구했고, 8만여명이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청원운동에 동참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은 잇달아 논평을 내놓고 관련법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은 재수사를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도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영화는 종종 사회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그린 <그놈 목소리>(2007),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을 그린 <아이들…>(2011)은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움직임을 불렀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실미도>(2003)는 북파공작원의 삶을 재조명하게 했다. <국가대표>(2009)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은 비인기 종목인 스키점프와 핸드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공지영씨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은 사형제 폐지 여론을 조성했다.

그러나 대부분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범을 잡은 영화, 법을 만든 영화는 없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영화는 세상에 대한 사이렌과 같아서, 사이렌이 울리면 모두 멈추지만 곧 제 걸음을 간다”고 말했다.

<도가니>는 다를까. 지금까지는 그렇다.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른 뒤에도 6년간 꿈쩍 않던 관료와 정치인들이 영화 개봉 1주일 만에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트위터로 대변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도가니> 같은 ‘사회파 영화’가 여론을 더욱 뜨겁고 빠르게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도가니>의 흥행은 한국 관객이 그 어느 나라보다 깨어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며 “오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공론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도가니>가 세상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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