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 시절만 해도 영화 속 휴대전화의 구실은 단순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전화를 하거나 받고, 통화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다 아쉬워하면서 끊는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운 뒤 화가 나 집어 던지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최근 불어 닥친 스마트폰, 그 중에서도 아이폰의 열풍은 아이폰을 이용해 제작한 '아이폰 영화'의 출현 뿐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까지 풍성하게 하고 있다.
먼저, 스릴러 '블라인드'.
아이폰의 음성안내 기능은 극중 시각장애인인 '수아'(김하늘)가 전화를 하고 받는 등 비장애인 못잖게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 기능을 설정해놓으면 액정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아이폰에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음성으로 안내 받으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 많은 휴대전화 중에서도 유일하게 아이폰에만 있는 기능이다. 안상훈(36) 감독은 "실제로도 국내외에서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아이폰의 이 기능을 이용해 편리하게 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영화에 채택했다"고 귀띔했다.
아이폰은 물론 거의 모든 스마트폰이 갖춘 영상통화 기능은 수아가 지하철에서 소시오패스 살인마 '명진'(양영조)과 맞닥뜨렸을 때 위력을 드러낸다. 명진이 수아를 뒤쫓고 있는 것을 먼발치께서 본 '기섭'(유승호)은 기지를 발휘한다. 전화로 수아에게 귀에 이어폰을 꽂게 하고, 영상통화를 켜서 앞을 비추게 한다. 그런 다음 영상통화로 수아의 폰카메라에 비춰지는 상황을 보면서 수아에게 말로 일러줌으로써 눈이 돼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수아가 기섭의 안내를 받으며 명진의 마수를 피해 달아나는 지하철역 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다.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의 "국가적 차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블라인드 속 기섭이 했던 것과 같은 서비스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공감를 얻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다음, 액션 멜로 '푸른소금'(감독 이현승)
'블라인드'에서 20대 후반 수아와 10대 후반 기섭이 이미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40대 중반 '두헌'(송강호)이 2G 피처폰을 사용하다 20대 초반 '세빈'(신세경)의 권유로 3G 아이폰으로 갈아타게 된다. 20년이 넘는 세대 차의 두 사람이 같은 스마트폰 세대가 된다는 것은 이들의 간극을 급속도로 좁히는 계기로 작용한다.
아이폰의 '연락처 교환' 기능은 막 스마트폰의 세계에 들어선 두헌을 놀라고 즐겁게 해준다. 세빈이 두헌의 아이폰과 자신의 아이폰과 부딪치는 것만으로 서로의 연락처가 교환되자 두헌은 "옛날에는 번호 하나를 따려면 그 고생을 해야 했는데…"라며 껄껄 웃는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중 '위 웨어'(We Where)도 큰 몫을 해낸다. 위치 검색을 허락해놓은 상대가 현재 있는 곳을 알 수 있게 하는 이 애플은 영화에서 이 넓은 세상,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세빈이 두헌의 곁으로 가고, 두헌이 세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아직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30, 40대들은 이 영화를 본 뒤 "스마트폰 안 쓰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거냐'라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이제는 대세에 따라야 할 때구나"라는 현실 인식이나 "20대 여친이 생기면 그때 바꾸련다"는 너스레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 감독은 "스마트폰의 등장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한계에 부딪쳐 포기하거나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서 벗어나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들의 상상력에 설득력을 부여해주고 있다"면서 "내가 다음 작품을 만들 때는 어떤 첨단 IT기기가 등장해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화할 수 있게 할지 기대된다"고 전했다.
뉴시스 제공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