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패스미스]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지는 스타들

심재희 / 기사승인 : 2011-08-22 11: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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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루니-토티, 국가대표팀에서 부진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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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소속 클럽에서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는 별다른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똑같은 축구화를 신고 똑같은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비지만 존재감이 엄청 떨어진다. 유니폼 하나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클럽에서 보여주던 환상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과장을 좀 보태 '국가대표팀에 속한 이 선수가 소속 클럽의 그 선수가 맞나?'라는 의심이 들 때도 간혹 있다. 이른바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지는 스타들. 축구팬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두 얼굴의 축구스타들을 살펴본다.


# 프란체스코 토티


토티는 '로마의 왕자'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왕자의 추억보다는 쓴 기억이 훨씬 더 많다. 토티는 1998년 10월 스위스와의 유로 2000 지역예선을 통해 처음으로 아주리군단 데뷔전을 치렀다. 유로 2000 본선 멤버에 당당히 합류했고, 이탈리아의 준우승에 큰 힘을 보태면서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았다. 이 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토티의 국가대표팀 악몽이 시작됐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의 16강전 퇴장으로 고개를 숙였고, 유로 2004에서는 그 유명한 '침 뱉기 사건'을 일으키면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조국과 함께 작아졌다. 2년 뒤 독일월드컵에서 토티는 이탈리아의 우승에 일조했다. 호주와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 버저비터를 꽂아 넣으면서 베테랑의 모습을 발휘했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전반적인 경기력은 썩 좋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토티는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58경기 9골. 토티가 8년 동안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남긴 성적표다. 19시즌 동안 610경기에서 262골을 터뜨리면서 '로마의 왕자'로 떠오른 모습에 훨씬 못 미친다. 유로 2000 이후 토티는 AS 로마 소속으로 11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면서 총 208골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가대표로서는 고작 5골밖에 터뜨리지 못했다. 로마에서의 토티는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는 승리 보증수표로 통한다. 슈팅력, 패싱력, 경기 조율능력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아주리군단에서 토티는 해결사가 아닌 '문제아'로 더 큰 유명세를 치렀다.


# 니콜라스 아넬카


아넬카는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못지 않게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던 유망주였다. 만 19세의 나이에 1998년 스웨덴과의 친선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러시아와 잉글랜드를 상대로 골을 뽑아내면서 '국제용'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고참급 선수들과 앙리와 트레제게의 벽에 막히면서 국가대표에서 기량을 뽐낼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고, 모처럼 기회가 찾아와도 기대 이하의 모습에 그쳤다.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에서 해결사로 거듭난 그였지만,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백업멤버에도 제대로 끼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 페네르바체, 볼턴을 거쳐 2008년 첼시에 안착하면서 아넬카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는 여전히 백업 이상의 존재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유로 2008 본선에 출전해 루마니아와의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섰지만 부진한 모습으로 실망감을 안겼고, 이후 두 경기에서 후반 교체투입되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리고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다시 기회를 잡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부진에 시달렸고, 대회 도중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에게 욕설을 퍼부어 중도 퇴출 당하는 비운을 맛봤다. 이후 아넬카는 프랑스축구협회로부터 18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사실상 국가대표 은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소속 클럽에서는 냉철하고 정확한 킬러의 모습을 보여주던 아넬카지만, 국가대표로서는 백업멤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선수에 그치고 말았다.


# 클라렌스 셰도르프


셰도르프는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다.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2회)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3개의 클럽에서 모두 팀의 중심축이 되어주면서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오렌지군단'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셰도르프는 특유의 에너지를 뿜어내지 못했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지만 긴 시간 동안 어정쩡한 활약에 그쳤다. 87경기에 나서 11골을 기록했으니 미드필더로서는 괜찮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경기력은 전혀 '아니올씨다'였다. 유로 1996, 1998프랑스월드컵, 유로 2000, 유로 2004에 모두 참가했지만 그는 매우 조용했다. 오죽했으면 유로 1996 8강 프랑스전에서 승부차기를 성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 정도다. 네덜란드 언론들과 축구인들은 셰도르프를 향해 "국가대표팀에서는 소속 클럽에서처럼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셰도르프는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과 불화를 겪으면서 오렌지군단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었고, 국가대표 은퇴의 길에 설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네덜란드 대표팀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필립 코쿠, 마르크 오베르마스, 에드가 다비즈, 루드 반 니스텔루이,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야프 스탐, 데 보어 형제, 데니스 베르캄프 등이 오렌지 빛깔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셰도르프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활약상으로 그들과 함께 웃지 못했다.


# 웨인 루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여주는 루니의 모습은 '투지' 그 자체다. 에너지가 터져 버릴 것만 같이 경기를 지배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해결사 본능을 드러낸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사뭇 다르다. 특히 중요한 대회에서 침묵하는 모습이 영 루니답지 않다. 루니는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의 주포로 활약하면서 스타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후 메이저대회 본선에서 골이 없다. 2006독일월드컵에서 기대를 한껏 모았지만 계속 무득점에 그쳤고,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상대 수비수 히카르도 카르발료를 밟아 퇴장 당하는 운명에 놓이게 됐다. 유로 2008 무대에서는 잉글랜드의 충격적인 지역예선 탈락으로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고,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16강전까지 무득점에 머물렀다. 큰 무대에서 쓴 맛을 본 루니는 계속해서 국가대표팀에서 작아지고 있다. 2010년과 올해 치른 13번의 경기에서 1골밖에 터뜨리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최근 두 시즌 동안 터뜨린 골이 무려 50골이니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루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해결사로 통하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는 '새가슴'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리오넬 메시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최고의 축구스타인 리오넬 메시도 국가대표팀에만 가면 작아진다. 아르헨티나 유니폼이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개인기와 미친 듯한 득점포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실제로 메시는 최근 3시즌 동안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38골을 터뜨렸다. 도움도 53개나 기록했다. 1경기 1개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서는 공격포인트 숫자부터 현격하게 떨어진다. 200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37경기에서 9골 11도움에 그치고 있다. 20세 이하 월드컵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누렸지만 성인대표팀에서는 무관이다. 2006독일월드컵과 2007년 코라 아메리카에서 좌절감을 맛봤고,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도 독일의 벽에 가로막혀 우승의 꿈을 접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내심 더 큰 기대를 걸었다. 기량이 만개했고 홈에서 대회를 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별예선 3경기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다시 작아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상대 진영을 헤짚고 다니는 메시의 모습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표팀 동료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메시 특유의 장점이 살아나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두커니 서서 플레이하는 모습까지 비쳐져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현재까지의 기록과 경기력을 살펴보면, '바르셀로나의 메시와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다르다'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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