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1일 "총선과 대선 공약을 총괄할 총선기획단을 구성해 신공항 재추진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언론사와의 기자간담회에서 '영남권 민심이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에 영남권 신공항 재추진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국익에 반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계획 변경없이 공약을 밀어붙이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라며 백지화한 신공항 건설을 여당 대표가 4개월여 만에 뒤집은 셈이다. 어떤 상황 변화도, 사전 논의도 없었는데 돌연 신공항 재추진이라니 뜬금없는 일이다.
그가 부산·경남의 민심을 달래는 차원에서 내놓은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공항 재추진 의사를 얼핏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대표 후보자 중 한 명으로서의 지역 공약과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은 무게감이 다르다. 선심 공약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는 얼마 전에도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를 모두 충청권에 할당하려다 호남 배제라는 역풍이 일자 "총선에서 의석이 나올 수 있는 충청권을 배려하겠다"고 답했다. 지역주의 부활을 노골화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신공항 재추진이든, 지역주의 발언이든 명색이 국가운영을 책임진 여당의 대표라면 쉽게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다.
절차와 방식도 그렇지만 하나의 정책이나 이슈가 갖는 파괴력을 가늠하지 못하는 듯한 자세는 더 큰 문제다.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촉발된 영남권 신공항은 영·호남과 충청 사이의 대지역주의는 물론이고, 공항 입지를 놓고도 인근 지역끼리 맞서는 소지역주의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지역주의가 불붙으면 어떤 공정한 해법도 도출하기 힘든 게 우리 정치사의 경험칙이다.
중앙과 지방을 뜨겁게 달군 신공항은 이 대통령이 나서서야 간신히 불길을 잡았다. 홍 대표의 말처럼 민심 위무책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런 접근법이야말로 여권과 보수세력이 복지논쟁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할 홍 대표가 민심에 귀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정당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이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총선 승리를 이끌고, 정권을 창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신공항 재추진론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 외에는 어떤 실익도 기대할 수 없다.
그간 비주류와 서민을 자처해온 홍 대표가 자꾸 주류들의 생존법인 한탕주의에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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