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1951년 7월 10일부터 2년 넘게 6·25 전쟁 휴전 협상이 지속되던 기간에도 전방에선 전투가 계속됐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지에선 전투가 끝날 때마다 주인이 바뀌었고 지도 위 전선도 1㎝씩 이동했다. '의형제'의 장훈 감독이 만든 '고지전'은 바로 그 1㎝에 현미경을 들이댄 전쟁 영화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리얼리티다. 철원군 백마고지를 본떠 만든 애록고지가 배경이다. 애록고지는 병사들이 삽으로 판 좁은 참호와 엄폐물로 누더기가 되어 있다. 6·25 기록사진에 나오는 전장 모습 그대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몸을 바짝 낮춘 채 움직인다. 미군 폭격기 '인베이더'와 아군 박격포가 포격하면 이를 신호 삼아 적 고지를 향해 돌격한다. 몹시 비탈진 경사면을 뛰어오를 때면 숨이 가빠지고 흙더미가 무너질 때면 함께 구른다. 상체를 뻣뻣하게 치켜들고도 총알을 피해 달리는 할리우드식 전쟁 영웅은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
세밀하게 재현한 전투 장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탄탄한 이야기다. 영화는 방첩대 중위인 강은표(신하균)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는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악어중대로 간다. 추리극 형태로 시작한 영화는 점점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며 전개된다. 관객은 추리극의 재미와 전쟁 영화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쓴 박상연 작가는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미 비슷한 재능을 보여줬고 이번에도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린다. 휴전 협정 당일 지휘부가 내리는 마지막 공격 명령이 전선에 있는 이들에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된다. 살아서 집에 가고 싶지만 명령을 따라야 하는 주인공들의 처지는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이랑 싸우는 거야"라는 대사로 요약된다.
순제작비만 약 110억원이 든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지만 작품 자체의 반전(反戰) 메시지와 완성도는 여느 예술영화 못지않다. 다만, 극 중 화자 역할인 강은표 중위의 모호한 캐릭터는 아쉽다. 그는 아군 중대에선 옛 친구에게 총을 겨누면서까지 임무에 충실하지만 정작 적군 저격수를 만났을 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133분. 상영 중.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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