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2일 오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수석대표인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과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가진 후 각각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남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22일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비핵화 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리 부상은 "6자회담을 하루빨리 재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했고, 위 본부장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계속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남북의 6자회담 대표가 머리를 맞댄 것은 2008년 12월 6자회담 이후 2년 반 만이다. 남북은 그동안 6자회담이 열릴 때 양자 회담을 갖곤 했으나, 이번처럼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 남북이 핵 문제 논의를 위해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핵 1차 위기가 고조되던 1993년 6월 미국 뉴욕에서 첫 미·북회담이 열린 이후 북한은 미국만을 핵 문제의 협상 상대로 인정하며 한국을 철저히 배제했다. 우리는 북핵(北核) 위협의 직접 당사자이면서도 미국 어깨너머로만 북핵 논의를 지켜보는 신세가 됐다. 정부는 이렇게 잘못된 북핵 논의의 틀을 바로잡기 위해 올 초부터 남북대화→미북대화→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북핵 논의 구조를 제시했고, 단단한 한미(韓美)공조를 바탕으로 북을 남북 협상장으로 먼저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북은 남북 회담을 자신들의 목적지인 미북회담으로 가기 위해 들러야 하는 정거장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 만큼 북이 핵 문제를 남쪽과 풀어보겠다는 성의있는 자세로 이번 회담에 임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北)을 상대로 '남(南)을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가는 길은 없다'는 원칙을 관철해낸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북은 지난달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접촉에 나섰던 우리측 인사들의 실명(實名)과 대화 내용까지 시시콜콜 공개하면서 "이명박 역적 패당과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북의 이런 태도는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남북대화의 문이 닫혀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게 했다.
그랬던 북이 그동안 좀처럼 내켜하지 않던 남북 간 핵 논의까지 수용하며 나선 것을 보면 남쪽과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와의 소통(疏通)이 꽉 막혀버린 현 상태를 더 이상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내부 사정이 절박한 것으로 보인다. 북이 어렵게 손을 내밀어 온 만큼 남북 서로의 입장을 살리면서 힘겹게 마련된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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