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2월 초부터 이달 초까지 한달간 파리 팔레 가르니에에서 오네긴 공연을 마친 박세은
[데일리매거진=이상은 기자] 발레 외에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어요. 쉴 때도 다른 발레 공연을 보는 게 좋아요. 춤은 제 삶 자체입니다."
발레리나 박세은(28)은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연습 중에 이마가 찢어져 바닥이 피로 흥건해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어도 그저 최소한의 휴식만 취한 채 무대에 올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마는 근성의 소유자다.
세계 최고 무용수들이 모인 프랑스 국립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도 초고속 승급을 거쳐 주역급인 제1무용수(프르미에르 당쇠즈·premiere danseuse)로 활약 중인 박세은을 지난 20일(현지시간) 발레단 옆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메인 공연장인 파리 중심가의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서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한 달간 이어진 오네긴 공연을 마친 뒤 잠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박세은의 여리고 유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조곤조곤한 말투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졌다
'오네긴'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31)을 원작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창작한 드라마 발레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청년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이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박세은은 이번 '오네긴' 공연에서 여주인공 '타티아나' 역을 맡아 총 21회 공연 중 5회에 걸쳐 열연했다.
그가 평소 꿈에 그리던 역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만큼, 오네긴은 박세은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세계 최고 무용수들이 모인 프랑스 국립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도 초고속 승급을 거쳐 주역급인 제1무용수(프르미에르 당쇠즈·premiere danseuse)로 활약 중인 박세은을 지난 20일(현지시간) 발레단 옆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메인 공연장인 파리 중심가의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서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한 달간 이어진 오네긴 공연을 마친 뒤 잠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박세은의 여리고 유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조곤조곤한 말투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졌다
'오네긴'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31)을 원작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창작한 드라마 발레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청년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이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박세은은 이번 '오네긴' 공연에서 여주인공 '타티아나' 역을 맡아 총 21회 공연 중 5회에 걸쳐 열연했다.
그가 평소 꿈에 그리던 역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만큼, 오네긴은 박세은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오네긴의 주역 타티아나로 발탁됐을 때의 얘기를 좀 해달라. 어떤 작품이고 왜 이 작품을 그렇게 하고 싶었나.
▲주역이 됐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연 3주 전 오네긴의 라이선스를 가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클래스에 참관하라는 이메일이 우리 발레단의 전 단원들에게 왔다. 그때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떻게 춤을 추면 잘할지 고민했다. 이후 우리 발레단 감독님의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을 소개해주겠다면서 나오라고 하더라. 나가서 앤더슨 감독님을 봤는데, 대뜸 키를 물었다. 167㎝라고 답했더니 내 볼을 한번 살짝 꼬집고 웃으시며 가셨다. 그게 다였다. 그때부터 느낌이 좋아서 기대를 조금 하긴 했다. 두 번째 조연인 '올가' 역만 맡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그러다가 발레단 인터넷 게시판에 내가 주역이 됐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꿈 같았다.
--오네긴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백조의 호수도 좋아하고 오네긴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오네긴은 한국에서 10여 년 전쯤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으로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아서 충격적일 정도였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의 첫 공연도 바로 오네긴이었다. 그때는 대타로 들어갔고, 2013년에는 군무로 전 막에 참여했다. 그리고 5년 뒤 꿈에 그리던 주연을 맡았다.
--공연에서 춤은 물론 감정선을 잘 살리는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퍼포먼스에 만족하나.
▲이런 큰 공연을 하고 나면 아쉬움이 더 크다. 참여한 공연 중에 연습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공연이었다. 주역이 되고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고,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갈비뼈와 종아리 부상이 있었지만, 충분히 연습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춤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기를 강조해서 많이 연습했다. 만족하지만 조금 아쉽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이나 공연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다.
--발레리나는 화려하지만 고된 삶인 것 같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는 어떻게 이겨내나.
▲기다리면 때가 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묵묵히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 역할이 오지 않아도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열심히 연습할 뿐이다.
--발레 외에 취미는 없나.
▲없다. 연습하거나 다른 발레 공연을 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 노력해봤는데 잘 안되더라. 파리에 7년째 살고 있지만, 에펠탑에도 한번 못 올라 가봤다. 발레 생각만 하다 보니…
--오네긴 공연 후 휴가는 어떻게 보냈나.
▲어머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함께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슈투트가르트에 가서 발레 '고집쟁이'를 봤다. 그 외에는 거의 매일 발레단에 나와 연습했다. 무용가 피나 바우슈가 이런 말을 했다. 춤추지 않으면 무용수들은 길을 잃는다고. 그 말이 마음 깊이 박혀있다.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다. 내가 출 수 없을 땐 춤 공연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다른 한국 출신 무용수들에게는 본인이 우상일 텐데. 어떻게 지내나.
▲이번에 정단원이 된 윤서후와 준단원 강호현이 함께 있다. 어리지만 생각이 깊고 기특하다. 나를 잘 따른다. 이 친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내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으니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그렇다고 내가 특출 나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먼저 이 길을 갔을 뿐. 나도 한국 친구들이 있어서 참 든든하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에도 올랐는데.
▲무용수로서 꿈같은 일이라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애착을 갖고 연습한 작품 '주얼'(Jewels)의 다이아몬드 역으로 올라 더 기쁘다. 6월 5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에 참가하고 거기서 수상자가 결정된다.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그저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연습에 전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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