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박대웅 기자] 민주당 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위한 어설픈 시도가 있다. 한마디로 본질을 왜곡한 자가당착적 자기모순 행위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한·미 FTA 발효 즉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다는 미국 측 약속을 받아오면 국회 비준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받고 있는게 그것이다. 이미 민주당 전체 87명의 의원 가운데 45명으로부터 구두 내지는 서면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후안무치한 부끄러운 처사다.
민주당의 절충안은 지난달 말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잠정 합의했다가 폐기한 방안과 일맥 상통한다. '선 비준 후 해결' 식의 논리로 실효성이 없다. 지난 양당 원내 지도부 협정 당시에는 발효 직후 투자자·국가소송제의 유지 여부를 미국과 협의한다는 것이었다면 이번 민주당의 절충안은 그 약속을 비준 전에 받아오라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다를바 없다는 얘기다.
미국은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못박고 있지만 설사 투자자·국가소송제의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해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급할게 없는 미국이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비준안 수정은 미 의회 승인 사항이어서 미 의회가 승인할 가능성도 낮다.
더욱이 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은 민주당과 시민사회 세력이 한·미FTA를 반대하던 주된 이유였다. 법무부 등 정부 일각에서도 주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미 FTA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말을 바꿔도 될만한 사항이 아니다. 때문에 일단 통과시킨 뒤 수정하겠다는 식의 자가당착적 논리는 민주당을 믿고 지지를 보낸 국민들의 신의를 져버리는 행위다.
더욱 큰 문제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매몰된 나머지 한·미 FTA 본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점이다. 권투로 비유하자면 한·미 FTA는 헤비급 미국과 이제막 미들급에 진입한 한국사이의 이익 불균형을 심화시킴은 물론 미국식 경제 틀로 한국을 편입시키는데 그 근본 문제가 있다.
실제로 1992년 10월11일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의 경제는 미국에 예속됐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충분한 검증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국가소송제 재협상을 앞세워 FTA 반대를 철회하려는 움직임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망국적 행보다.
'한·미 FTA 원조당'인 민주당은 비열한 꼼수로 은근슬쩍 발을 빼기보다는 국민 앞에 '원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정치 공학적 접근이 아닌 분명한 소신과 철학으로 오직 '국익'만을 위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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