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신화’ 박병엽 전격 퇴진

배정전 / 기사승인 : 2011-12-07 13: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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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산증인인 팬택 박병엽 부회장(49)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삐삐(무선호출기) 신화’의 주역인 박 부회장은 휴대전화, 스마트폰으로 종목을 바꿔가며 맨손으로 팬택을 세계 7위 휴대전화 업체로 키웠다. 무리한 해외 사업 확장으로 회사가 2007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자 “월급을 받지 않겠다”면서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경영 정상화에 매달렸다.

경영 잘못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정상화시킨 뒤 홀가분하게 옷을 벗은 사례는 흔치 않다. 팬택의 창업자이자 오너인 박 부회장은 수조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팬택을 ‘맨손’으로 떠났다.

박 부회장은 6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2월31일을 끝으로 팬택 경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회사가 정상화돼 떠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제 쉬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인) 지난 5년간 휴일 없이 일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이 피로하고 체력적으로 감당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박 부회장의 임기는 2014년 3월25일까지다.

박 부회장은 내년 3월부터 자격이 생기는 1000억원대의 스톡옵션(1억6400만주)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채권단을 비롯한 외부의 압력은 없었다고 했다. 팬택 창업자인 박 부회장은 회사 지분이 전혀 없다. 2007년 4월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4000억원에 이르는 지분을 회사 회생자금으로 내놨다.

박 부회장은 스물아홉 살이던 1991년 10평짜리 집 전세금 4000만원을 빼 팬택을 차렸다. 직원 6명이 전부인 무선호출기 회사였다. 무선호출기 사업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자 1997년 과감하게 휴대전화로 갈아탔다. 이동통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2005년 매출이 3조원을 넘기며 세계 7위 휴대전화 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6년 무리한 사업 확장 탓에 자금난에 빠지며 2007년 4월 워크아웃 신세를 지게 됐다. 4000명에 달하던 직원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8000억원에 이르는 회사 부채에 직접 보증을 섰다. 그는 “당시 죽으려고 한강다리에 섰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은 독해졌다. 박 부회장이 “백의종군하겠다”고 하자 전 임직원은 휴일 없이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기술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사양길에 접어든 휴대전화 대신 스마트폰 개발에 올인했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팬택은 워크아웃 직후인 2007년 3·4분기부터 18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1107만대의 단말기를 팔아 2조775억원의 매출을 올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도 제쳤다. 요즘 유행하는 4세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세계 5위로 올라섰다.

박 부회장은 “아직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작은 자회사는 당분간 챙기고 싶다”고 마지막 열정을 표시했다. 그는 “워크아웃 당시 책임을 함께해주리라 믿었던 금융사가 발을 빼는 행태를 보인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며 “팬택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고, 우리 제품을 국내외 소비자들이 찾는 모습이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채권단이 대주주로서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팬택 같은 기업이 기업구조개선 작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기업활동을 하기 좋은 나라”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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