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축구 역시 감독 하기 참 어렵다. 친분이 있는 대학교 감독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 먹는다"라고. 국가대표 감독이면 오죽하랴. 그래서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것일 게다.
조광래 감독의 자질론이 뜨겁다. 레바논전 충격패의 후폭풍이다. 경기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 자체가 낙제점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축구팬의 한 사람 입장에서 그 날 경기를 보면서 필자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패배가 결정된 뒤 '조 감독 욕 꽤나 먹겠구나'라는 생각이 곧바로 머리를 스쳤다.
한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조광래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UAE전에서 2-0으로 승리한 이후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UAE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과도 결과지만 레바논전 내용이 좋지 않아 매를 들었다는 것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까닭이다. UAE전 이후에는 조용하다가 레바논전 이후에 시끌벅적 해졌다. 만약, 레바논까지 꺾었다면 '내용이 나빴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스포츠 세계에서는 1등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은 소위 말하는 '목표 달성'이라는 시나리오를 큰 그림에서 그린다. 조광래 감독의 1차 시나리오는 2014브라질월드컵 본선행이다. 물론 3차예선에서 빌빌거리는 모습에 적잖은 실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조광래 감독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가 그린 큰 그림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조광래 감독은 이번 중동 2연전까지 자신의 색깔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한일전 0-3 대패 이후에도 조광래식 축구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조광래 감독이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화풀이식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전술의 중심축인 기성용의 부상 공백과 박주영의 경고누적 결장은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그들을 대체할 인물이 없었기에 아쉽지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이롭다.
실제로 조광래 감독은 부임 이후 대표팀을 젊게 바꿨다. 나름대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영표와 박지성이 동시에 빠졌지만 그가 원하는 축구를 계속 펼쳤다. 구자철, 지동원, 이용래, 홍정호, 손흥민, 서정진 등의 능력을 알아보고 국가대표로 키워준 것이 바로 조광래 감독이다. 세대교체에 실패해서 애를 먹는 대표팀이 적지 않다. 최근에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그랬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세대교체를 적절히 시도하면서 자신의 축구를 펼친 부분은 나쁘지 않다고 봐야 옳다.
멀티 자원의 활용에 대한 비판도 아쉬운 대목이다. 조광래 감독이 중용하는 어린 선수들은 대부분이 멀티 자원이다. 팀 상황에 맞게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결정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이번 중동 2연전에서 홍정호의 수비형 미드필더 선택이 잘못된 결과가 됐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구자철의 처진 스트라이커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조광래 감독은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졌고, 그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을 뿐이다. 김정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김정우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일종의 군중심리가 생기는 것 같다. 팬들이 거세게 비판을 하니, 언론들까지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조광래 감독은 중동 2연전에서 쓴 맛을 봤다. 하지만 아직 승부의 결말이 온 것은 아니다. 3차예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최종예선의 그림도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한 경기의 결과를 전체적인 잘못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음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축구는 결과로 말하는 종목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사령탑이 진다. 내 기억 속에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이 좋아 면죄부를 받는 국가대표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좋은 내용도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이번 중동 2연전의 내용이 좋지 않은 것보다 레바논전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거센 비난을 받고 있음을 조광래 감독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광래 감독에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그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날이 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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