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심판 판정에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졸전'이었다. 공격-중원-수비 모두 전혀 중심을 잡지 못했다. 결국 상대가 잘 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못해서 패한 꼴이 됐다.
조광래 감독은 레바논전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박주영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하고, 기성용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전체적인 변화를 줬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모험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박주영과 기성용이 빠진 자리에는 이근호와 홍정호가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플레이가 겉돌았다.
우선, 이근호는 원톱으로 나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 움직임 자체는 가장 좋았다. 하지만 외로웠다. 이근호는 피지컬보다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원톱으로서의 존재감은 떨어졌다.
홍정호는 전체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이 미흡했다. 수비수가 원래 포지션이다 보니 상대공격수들의 동선 파악은 어느 정도 잘 했다. 하지만 패스의 줄기를 읽는 능력과 후방에서 공격을 지원하는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조광래 감독이 야심차게 내세운 '젊은 피' 이승기-손흥민-서정진의 활약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세 선수가 공격지원병 역할을 해야했는데, 따로 논다는 느낌을 많이 들게 했다. 전반 중반까지 개인기를 바탕으로 의욕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조합에서 문제를 느낀 이후에는 발걸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이번 경기는 남아공월드컵 이후 '양박쌍용'(박지성-박주영-기성용-이청용)이 모두 빠진 첫 경기였다. 박지성과 이청용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양박쌍용'이 보여줬던 다양함과 안정감이 대표팀에 전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양박쌍용'은 공격과 중원에서 팀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줬다. 어느 한 선수가 특출난 것이 아니고, 네 선수가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팀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개인이 빛나기보다는 팀이 더 빛나기 위해서 좋은 호흡을 보였던 '양박쌍용'이었다.
하지만 레바논전에서는 '양박쌍용'의 역할을 하는 대표팀의 구심점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플레이가 조합을 이루기보다는 붕 떠 있었다. 1+1이 1 이하의 결과로 나타나면서 전체적인 팀의 전력이 플러스로 향하지 못했다.
들쭉날쭉한 일정으로 긴 레이스를 펼치다 보면 고비가 오기 마련이다. 그 고비를 잘 헤쳐나가는 것이 바로 강팀의 요건 가운데 하나다. '양박쌍용'처럼 팀의 중심축이 잘 잡혀 있다면 강팀은 웬만해선 잘 흔들리지 않는다. 중심이 잘 잡혀있고, 돌발변수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져 있어야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조광래호는 레바논전 패배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 '양박쌍용'과 같은 대표팀의 확실한 믿을 구석이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 중심축을 기본으로 돌발적인 상황에 잘 대처하는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 중심이 흔들린 강팀은 약팀들의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쿠웨이트전을 빈 틈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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