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스포츠 초대석] ⑤ '짱구' 장정구

심재희 / 기사승인 : 2011-11-08 1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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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행 전설의 복서 "후배들이여, 진정한 프로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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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1970~80년대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단연 '프로복싱'이었다. 링 위의 선수들이 펼치는 화끈한 경기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한국은 수 많은 세계챔피언을 배출하면서 프로복싱 강국으로 거듭났다. 과거 한국의 프로복싱 중흥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이번 스포츠 초대석의 주인공이다. 작은 체구에 퍼머 머리를 하고 상대를 무섭게 몰아치며 무패질주를 거듭하던 자랑스러운 세계챔피언. '짱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장정구가 바로 초대손님이다. 은퇴 이후 프로복싱기자협회(BWAA)가 선정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F) 가입자로 뽑히면서 팬들을 또 한 번 감동시킨 장정구를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다!

지난 2009년 말 장정구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이 결정됐다. 페더급의 강타자였던 대니 로페즈(미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3명의 명예의 전당 가입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명예의 전당 헌액식은 지난 2010년 6월 9일부터 13일까지 미국 뉴욕 주 캐너스토타에서 펼쳐졌다. 기분 좋은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분이 어떠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선수 시절에 힘들었던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는 예상 외의 답을 꺼냈다. 그리고 이내 "당연히 매우 영광스럽다. 한국복싱의 위상이 다시 조금이라도 높아졌으면 좋겠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장정구는 그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복서였다. 1986년과 1987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고, 1980년대를 대표하는 WBC 10인의 복서에도 뽑혔다. 1993년에는 WBC 30주년 기념 27인의 복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스타로서 공인됐다. 또한 2000년에는 WBC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됐고, 2007년에는 세계복싱 명예의 전당(WBHF)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는 아쉽게 최종 탈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장정구는 "선수 시절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다. 많은 분들께서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내주셨기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은퇴한 지가 2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장정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복싱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 프로복싱이 부활하려면?

1980년대까지 황금기를 누렸던 한국 프로복싱은 최근 침체기를 걷고 있다. 한국은 1966년 김기수를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 무려 42명이나 세계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1987년에는 무려 6명이 세계챔피언이 되면서 세계 최고의 복싱강국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서 프로복싱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유일한 세계챔피언이던 지인진이 챔피언벨트를 자진 반납하면서 한국은 세계챔피언이 한 명도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웃 일본이 5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하며 프로복싱의 인기가 드높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198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정구의 눈에는 한국 프로복싱의 현주소가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는 "이대로 가면 답이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일단 사람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복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복싱에 대해서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복싱 최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또 일본은 어떠한가"라고 이야기하면서 복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장정구는 아마추어 시스템의 보완과 방송 및 언론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프로복싱 역시 아마추어 시스템이 탄탄해져야 더 발전할 수 있다. 최근 아마추어 선수들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선수 육성과 지원에 대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방송 및 언론에서의 지속적인 관심 역시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자주 노출되어야 인기를 끌 수 있지 않겠나. 프로복싱 중계와 관련 프로그램들이 어서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 복싱의 아쉬운 현주소를 냉정하게 되짚었다. 장정구의 말이 맞다. 현재 한국복싱은 '위기' 속에 빠져 있다.

# 짱구의 전성시대

장정구의 선수시절 전적과 이력은 정말 화려하다. 1975년 12세의 나이에 복싱에 입문한 그는 1980년 17세에 MBC 신인왕전 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1983년 파나마의 일라리오 사파타를 TKO로 꺾고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그는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5년 5개월 동안 무려 15번이나 타이틀을 방어하면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했다. 15차 방어에 성공한 뒤 개인 생활에 문제가 생겨 1988년 타이틀을 반납했다. 그리고 1989년 다시 링 위에 섰으나 2승 3패를 기록한 후 한계를 느꼈고, 결국 1991년 복싱 글러브를 벗었다.

그는 한참 잘 나가던 때에 타이틀을 반납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장정구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잡념이 없어야 운동을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인데, 그 때 상황에서는 도저히 운동에 집중해서 할 수 없었다. 다시 링에 돌아온 이후에 열심히 했지만 한계를 실감했고, 아무런 후회 없이 은퇴를 할 수 있었다"면서 자신의 선수생활을 되뇄다.

이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전성기는 언제고, 최고 라이벌은 누군가"라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장정구는 "딱히 전성기가 없었다. 복싱 글러브를 낀 이후 무조건 열심히 했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선수도 없다. 경기가 잡히면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 상대에 대한 연구에 연구를 더했다"고 말했다. 피나는 훈련과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언제나 화끈한 경기를 펼쳤던 장정구. 짱구의 전성시대는 복싱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오르던 모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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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구의 우상

복싱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했다. 장정구는 자신이 복싱 글러브를 낀 가장 큰 이유로 '호기심'을 언급했다. "어린 시절 TV로 중계되는 프로복싱 경기를 봤다. 김현치 선배가 필리핀 원정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위성 생중계로 봤는데, 너무나도 멋있었다. 당시 프로복싱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자연스럽게 복싱과 인연을 맺게 됐다"라며 복싱과의 첫 인연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복싱영웅인 그에게도 우상이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복서로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인 슈거레이 레너드를 꼽았다. "레너드는 복싱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기본 자세, 펀치 각도, 경기운영 능력 등 모든 부분에서 예술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장정구는 은퇴 이후 일반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프로모션 일을 하면서 후배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식 사업을 펼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이지만 프로복싱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대단했다. 특히 후배들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조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숲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지 않는다." 장정구가 선수 시절 항상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말이다. 복싱에 몸 담고 있는 후배들이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기량이 정점에 오른 뒤에는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면 자신의 복싱인생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

# 프로복싱의 부활을 꿈꾸며!

인터뷰 말미에 장정구는 자신을 아껴준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한국 프로복싱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랐다. "선수 시절을 되돌아보면, 솔직히 우선 괴롭고 힘들었던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체중 감량과 고통스러웠던 훈련 등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기도 하다. 하지만 챔피언까지 오르고 타이틀을 오랫동안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팬들께서 나에게 에너지를 전달해주셨기 때문이다. 링 안팎에서 보내주시는 응원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면서 즐겁게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면서 복싱팬들을 향해 겸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로복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다시 한 번 바랐다. "현재 한국 프로복싱이 침체기에 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다시 한 번 프로복싱의 중흥기가 오기를 바란다. 전반적인 투자와 관리가 잘 이뤄져 사람들이 다시 복싱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링을 떠나서도 한국 프로복싱을 항상 지켜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복싱 글러브를 벗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장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서 지난 날 멋진 승부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우리들의 복싱영웅. 비록 지금은 링 위에 서 있지 않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링 위에서 멋진 스텝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짱구' 장정구는 한국 프로복싱의 부활을 진심으로 바라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세계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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