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패스미스] 게로아 파문과 일본대지진 축하현수막

심재희 / 기사승인 : 2011-09-29 13:22:28
  • -
  • +
  • 인쇄
ACL 8강 2차전 세레소 오사카전, '일본 대지진 축하현수막' 논란

sponichi.jpg

[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19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일전. 한국은 일본에 0-1로 패했다. '일본의 전설' 미우라 가즈요시에 결승골을 얻어맞고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당시 한국 축구팬들을 두 번 분노케 한 일이 있었다. 일명 '게로아 파문'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팬들은 일본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수막을 관중석에 펼쳤다. '일본 2-0 한국'의 식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데, 영어로 쓰여진 현수막의 철자가 조금 이상했다. 'JAPAN 2-0 KEROA'. 코리아가 아닌 '게로아'였다. E와 O를 위로 화살표로 바꿔 실수인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게로아'는 '하인', '종'을 뜻하는 일본어. 한국을 비하하는 응원에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일본의 수준 낮은 응원문화 때문이었을까. 일본대표팀은 '도하의 악몽'을 겪으면서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라크에 경기 종료 18초를 남겨놓고 동점골을 내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도하의 기적'이 바로 그때 벌어졌다.

'게로아 파문'이 일어난지 18년 후. 2011년 9월 한국 축구팬들의 성숙하지 못한 응원문화가 구설에 올랐다. 전북과 세레소 오사카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전북 서포터들이 내건 현수막이 문제였다. '日本の大地震をお祝いします'(일본의 대지진을 축하합니다). '게로아 파문'에 뒤지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만 전북 서포터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은 이동국의 4골을 앞세워 6-1로 승리했다. 1차전 패배를 설욕하면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북 서포터의 어리석은 행동에 그 승리의 의미가 퇴색됐다. 당연히 일본 쪽에서는 분노의 뜻을 표출하고 있다.

'게로아 파문'으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면서 일본 축구팬들을 손가락질 했다. 그렇다면 '일본대지진 축하현수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상대를 적당히 자극하는 것은 응원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아픈 구석을 후벼파서야 되겠는가. 응원문화에도 최소한의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레소에는 김보경과 김진현이 활약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용병 신분으로 팀의 주축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선수는 '일본 대지진 축하현수막'을 어떻게 생각할까.

국제축구연맹(FIFA)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페어 플레이'다. 경기장 안의 선수들은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 페어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경기장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밀리지 않는 응원을 펼치는 것은 좋다. 단, 페이 플레이의 범위 내에서다.

'일본대지진 축하현수막'. 18년 전 '게로아 파문'에 분노했던 필자의 얼굴이 뜨거워진다.

사진출처=스포니치 화면 캡처.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주요기사

+

핫이슈 기사

칼럼

+

스포츠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