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곽노현 교육감(57) 당선에 역할을 한 진보진영 인사들이 협상 과정 전모를 밝히겠다며 1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열린 진보진영의 기자회견에는 곽노현 후보 캠프의 협상 대리인이었던 김성오씨와 조승현 선거대책본부(선대본) 상임집행위원장, 박석운 공동선대본부장이 참석했다.
■ 18일 밤에 무슨 일이?
곽 교육감 캠프가 전한 당시 단일화 과정은 이렇다. 지난해 5월18일 오후 3시, 서울 사당동 커피숍에서 선거비용 보전에 대한 협상이 진행됐다. 곽 교육감 측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53)가 출마를 포기할 경우 박 교수 캠프의 유세차량, 선거운동원, 연락사무소를 승계하는 등 합법적인 형식으로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박 교수 측은 “승계보다 직접 돈으로 보전해달라”면서 10억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빚쟁이들 때문에 선거 사무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예비후보 등록 이후 쓴 비용 7억원과 선거사무소 보증금 등 3억원을 돈으로 보전해달라”고 했다.
뒤늦게 곽 교육감이 커피숍에 도착했다. 김성오씨는 커피숍 입구에서 곽 교육감에게 “박 교수가 돈을 요구하니 협상 테이블에 앉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이를 받아들여 박 교수를 만나지 않은 채 커피숍을 떠났다.
김씨와 박 교수 측 협상 대리인 ㄴ씨, 박 교수 셋이 앉아 밤 11시30분까지 협상을 지속했다. 박 교수 측이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자 난감해진 김씨는 이 문제를 곽 교육감과 선대본에 전화로 알렸으나 “어림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김씨가 퇴장하는데, 박 교수가 커피숍 입구까지 쫓아나와 손가락 일곱개를 펴고선 “그럼 7억원이라도 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씨가 돌아 나오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박 교수의 측근인 ㄱ씨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18일 밤 상황에 대해 ‘7억원 이상을 주기로 협상이 타결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박 교수의 협상 대리인 ㄴ씨는 ‘이날 밤 협상은 결렬된 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상황을 종합해볼 때 곽 교육감 측 주장대로 18일 밤 금전적 대가의 단일화 협상은 깨졌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 남는 의문점…
19일 새벽부터 오후 4시 단일화 발표 전까지 무슨 일이?
그러나 협상이 결렬된 이후 상황에 대해선 박 교수 측 ㄴ씨와 곽 교육감 측 설명이 크게 엇갈리기 시작한다.
곽 교육감 측은 다음날(19일) 점심 시간 이후, 박 교수 측에서 갑자기 “조건 없는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주장한다. 김성오씨는 “당시 박 교수는 그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본 홍보대행사들이 모두 선금 없이는 유세차량 지원과 공보물 인쇄를 해줄 수 없다고 나와 선거유세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석운 공동선대본부장은 “박 교수가 돈 때문에 선거를 중단하는 것처럼 비치기보다 원로들의 중재로 단일화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려 입장을 바꾼 것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곽 교육감 당선 몇 달 후 박 교수가 “약속대로 7억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하자 곽 교육감 측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18일 밤 협상 결렬 후 ㄴ씨와 곽 교육감 캠프의 회계담당자 ㄷ씨가 사적으로 술자리를 했고, 이날 술자리가 어떤 형태로든 박 교수가 ‘7억원을 주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ㄴ씨와 ㄷ씨는 동서 사이다. 즉, ㄴ씨가 그날 밤 ㄷ씨와 나눈 사적인 이야기를 합의로 오해하고 박 교수에게 알렸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ㄴ씨의 말은 전혀 다르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19일 새벽 ㄷ씨와 술을 마신 일이 없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협상이 결렬된 후 ㄴ씨는 박 교수에게 “각서 받는 것은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박 교수는 결국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니) 더 이상 선거를 하긴 힘들겠다. 당신에게 전권을 위임할 테니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19일 오전 ㄴ씨는 김성오씨와 곽 교수 측근 ㄹ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들 뜻대로 각서는 받지 않겠다. 합법적인 형식으로 선거자금을 보전받겠다”면서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날 협상 과정에서 크게 감정이 상한 김씨와 ㄹ교수는 ㄴ씨와 다시 만나기를 꺼렸다. 이 때문에 ㄴ씨가 손윗동서인 ㄷ씨에게 중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ㄴ씨는 “김성오씨와 ㄹ교수가 ㄷ씨의 중재로 그날 오후 1시30분쯤 인사동의 한 음식점으로 왔다”면서 “그 자리에서 ‘합법적인 형태로 선거자금을 보전해 박 교수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내용의 협상이 타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합의 내용 자체가 애매모호해 박 교수와 곽 교육감 측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박 교수 측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말만 보고 7억원을 준다고 받아들인 것이고, 곽 교육감 측은 ‘합법적 형태’라는 말만 강조해 돈을 주기로 약속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낮 협상이 타결됐다는 ㄴ씨 주장에 대해 김성오씨는 “나는 19일에 오전부터 오후까지 경기도 하남에 있었는데 어떻게 ㄴ씨를 만날 수 있었겠느냐”면서 “나는 그날 단일화 소식도 전화로 들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ㄴ씨는 “곽 교육감 측 협상대리인 김성오씨와 박 교수 측 협상대리인인 내가 19일에 만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단일화가 성사됐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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