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대한민국은 2010밴쿠버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빙상 강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 동안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부진한 성적에 그쳤던 스피드 스케이팅이 최고의 모습으로 전성기를 열어젖혔고, 전통적인 메달 밭이었던 쇼트트랙 역시 세계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빙상 트리플 크라운'(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는 것)의 마무리를 바로 '피겨여왕' 김연아가 담당했다. 김연아는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의 무결점 연기를 펼쳐 보이면서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에 이어 여자 피겨에서 김연아가 정상에 오르면서 한국 빙상의 쾌거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김연아는 세계 정상 등극 이후 은퇴설로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1년 만에 복귀 무대였던 러시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피겨 퀸'의 자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아쉬운 점은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다시 공백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김연아의 선수 생활 지속 여부가 팬들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에서 남다른 재능을 갖춘 유망주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는 것처럼, 피겨에서도 '제2의 김연아'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단 전망은 매우 밝다. 김연아의 명품연기를 보고 기량을 갈고 닦은 '포스트 김연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리틀 김연아'라는 평가를 얻은 피겨 유망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한국 여자 피겨의 밝은 미래를 기대케 하고 있는 '김연아 키즈'. 그 가운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1997년생 소녀 3인방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해봤다.
# '피겨 신동' 김해진
김해진(과천중학교)은 '김연아 키즈'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선수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자질을 보이면서 '피겨 신동' 소리를 곧잘 들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에는 믿기 힘든 환상적인 연기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초등학교 때의 김연아를 능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이미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성인 선수들 못지않은 탄탄함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12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해 1월에 펼쳐진 전국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 부분에서 김해진은 곽민정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올림픽 나이 제한(16세 이상)에 걸리지 않았다면, 밴쿠버올림픽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할 수도 있었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선보였다. 김해진은 2010년 트리글라프 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문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 제65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1위에 올랐다. 각종 대회에서 두드러진 활약과 함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면서 '포스트 김연아'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김해진이다.
김해진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탁월한 점프 능력이다. 김연아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점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김해진은 이미 초등학교 때 성인 선수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고난도 점프를 잇따라 성공하며 큰 화제를 낳았다.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을 제외한 트리플 5종 점프(트리플 러츠, 트리플 플립, 트리플 루프, 트리플 토룹, 트리플 살코)를 성공했다. 대한민국 여자 피겨 역사상 초등학교 시절 트리플 5종 점프에 성공한 선수는 현재까지 김연아와 김해진이 유이하다.
올해 초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2연패를 이룩한 김해진은 2월 펼쳐진 동계체전에서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3+3 점프)를 성공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동안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실전에서 선보인 국내 선수는 김연아밖에 없었다. 김해진이 김연아의 뒤를 이으면서 고난도의 점프 기술을 완벽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다소 주춤했던 김해진이 멋진 점프 기술을 바탕으로 '피겨 신동'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 피겨스타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 '최연소 국가대표' 박소연
박소연(강일중학교)은 1997년생 3인방 가운데서 생일이 가장 늦다. (이호정-3월 15일, 김해진-4월 23일, 박소연-10월 24일) 하지만 성장 속도나 꾸준함에서는 라이벌 선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항상 1인자 김해진과 열띤 경쟁을 펼쳐왔다. 우승 운이 별로 없었지만, 김해진 못지않은 실력을 갖춰 나가면서 언제라도 1인자로 올라설 채비를 갖춘 '실력 있는 2인자'로 평가 받고 있다. 2009년에는 김해진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면서 '최연소 국가대표'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박소연은 2010 회장배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랭킹전에서 여자 싱글 2그룹에 속했다. 실력이 모자라서 1그룹이 아닌 2그룹으로 밀려난 게 아니었다. 생일이 늦어 어쩔 수 없이 어린 동생들과 2그룹에 속해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소연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멋진 연기를 펼쳐 보였다. 실력은 1그룹 언니들보다 더 뛰어났다. 최종합계 132.03점을 얻으면서 1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한 곽민정(126.20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동안 공식 대회에서 줄곧 상위권에 랭크 되었던 박소연은 점프 기술의 정확성과 난이도에서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다. 점프와 점프 사이의 연결동작이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아 가산점을 받는 부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점프의 비거리가 탁월하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세계를 제패한 김연아처럼 호쾌한 점프 비거리를 선보이고 있어 점프 기술의 완성도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점프 기술의 성공률이 숙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경험을 계속 쌓으면서 힘과 스피드가 더욱 붙어 기대치를 드높이고 있다.
박소연은 올해를 도약의 해로 삼고 있다. 김해진이 완성한 트리플 5종 점프에 도전하며 전체 연기의 질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계획이다.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각종 대회에서 수위권에 포함되고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는 불운을 맛봤지만, 지난해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랭킹전에서 당당히 전체 1위를 차지해 '2인자' 꼬리표를 떼어냈다. 시나브로 성장하고 있는 박소연이 자신의 별명인 '은빛날개'처럼 화려하고 높게 날아오를 채비를 마쳤다.
# '무서운 상승세' 이호정
이호정(서문여자중학교) 역시 '리틀 김연아'로 꼽히는 선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동안 김해진과 박소연보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아 왔다.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들과 함께 '김연아 키즈'로 함께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각종 대회에서 김해진과 박소연에 못 미치는 성적에 그쳤다. 가능성은 보이지만 두 선수에 비해 할 걸음 뒤떨어진 것으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전체적인 기량의 안정감이나 기술의 난이도 등에서 라이벌들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아쉬운 평가에도 불구하고, 어린 이호정은 흔들리지 않고 조금씩 성장세를 이어 왔다. 그리고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나타내며 김해진과 박소연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해부터 지긋지긋 했던 슬럼프를 확실하게 털어내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주니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부활의 날갯짓을 펄럭였다. 그리고 지난 3월 강원도 강릉에서 펼쳐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3위에 올랐다.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라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무대에서도 무난한 연기를 펼쳐 보이면서 다시 한 번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호정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 연기력이다. 언제 어디서든 무대 위에 서면 자신이 갈고 닦은 기량을 십분 발휘할 줄 아는 선수가 바로 이호정이다. 특별히 강점을 지닌 기술은 없지만 모든 부분에서 고른 기량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경기력의 기복이 매우 적다. 힘과 스피드를 겸비하고 있어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도 숨은 장점이다. 이호정이 갖춘 비장의 무기를 꼽으라면, 스핀과 표정연기를 들 수 있다. 호쾌하고 유연한 스핀 동작은 '김연아 키즈' 가운데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또한,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화려한 기술에 탁월한 표정연기를 덧칠해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부분은 성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호정은 지난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부상을 입었다. 경험을 쌓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부상 때문에 기술의 난이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수준급 점수를 얻었다. 전체적인 연기의 안정감이 살아 있었고, 놀라운 표정연기가 기술과 잘 어우러졌기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평가다. 컨디션을 회복해 기술의 난이도를 높이면 점수는 따라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내리막을 걸었던 '유망주' 이호정이 슬럼프의 늪에서 빠져 나오면서 '포스트 김연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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