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세상이야기/신춘기행⑥] 남이섬, 대학 때의 통기타 추억을 되살리는 곳

남영진 논설고문 / 기사승인 : 2019-06-05 09: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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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일제 말인 1943년 청평댐을 막으면서 완전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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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서울 상봉역서 경춘선 열차를 기다릴 때부터 맘이 설랬다. 대학 때인 70년대는 청량리서 경춘선 완행열차를 타고 대성리, 청평의 안전유원지, 가평의 남이섬, 강촌 등을 다녔다.


야유회와 소풍 때도 다녔지만 천렵이 취미인 나는 열차나 버스를 타고 고기잡이를 다녔다.


마석의 수동유원지, 대성리 여학생 풀장 밑, 팔당 밑의 덕소서 배를 타고 모래톱으로 건넜고 양수리에서 버스를 타고 서종면의 문호리 등지로 돌아 다녔다.


가평이나 강촌은 꽤 먼 곳이었다. 특히 남이섬은 가평역에서 내려 30분정도 걸어가 또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었다.

남이섬은 친구들과 텐트를 갖고 가 1박2일 야영을 하던 곳이었다. 군용버너에 밥을 하고 꽁치통조림을 털어 넣어 매운 찌개를 끓였다. 밤새 술을 마시며 메타세콰이어 나무숲 위로 반작이는 별빛에 취하던 곳이다.

이 남이섬을 대학 동기 30여명이 주말인 지난6월1일 경춘선을 타고 함께 야유회를 갔다.


2000년대 초 미디어오늘 직원들과 함께 방갈로를 빌려 연수회를 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20년만이다.

가평역에 내리니 대학 때부터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잘했던 최광문 친구가 역 앞 광장 모퉁이에서 앰프를 틀어놓고 일행을 반겼다. 딱 45년 전 대학 야유회 때의 그 모습이다.

부부 동반한 친구들과 4인조씩 나누어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의 페리선착장으로 향했다. 옛 가평역에서 철길 밑 굴을 넘어 걷기는 꽤 멀었는데 새 전철 역사가 생기면서 왕복 버스도 있고 택시로는 10분이 채 안 걸렸다.

선착장 입구 ‘WELCOME TO NAMI REPUBLIC’이라는 표어가 눈에 띈다.

짚라인(Zipline) 타워가 눈앞에 우뚝 서있다. 젊은이들은 짚라인을 타고 물을 건너 남이섬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20여 년 전만해도 목선보트를 타고 건넜는데 이번에는 배 양쪽에 20여개의 만국기를 단 꽤 큰 호화선이다.

왕복선을 기다리는 승객은 단체와 개인 줄에 나눠 서서 기다렸는데 외국인들은 상징적인 ’남이나라 비자‘를 기념으로 받는다.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서양인들도 많았지만 베트남 중국 대만 일본인 손님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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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이섬 페리선착장 ⓒ데일리매거진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芳荷里) 북한강 안에 있다. 총면적이 14만여 평. 원래 홍수 때만 침수돼 섬이 되는 조그만 봉우리 땅이었는데 일제 말인 1943년 청평댐을 막으면서 완전한 섬이 됐다. 해방 후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씨가 이 섬을 사들여 남이(南怡)장군 전설이 깃든 곳이라 해서 ‘남이섬’이라 명명했다 한다. 남이는 세조 때 함경도에서 반역을 꾀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25살 약관에 병조판서를 지냈던 무관이다.


남이섬 선착장에 내려 중앙 길 초입에 남이장군묘가 있다. 의령 남씨 족보에는 그의 묘가 경기도 화성에 있다고 되어 있으니 이곳은 가묘일 것이다. 남이는 세종 23년인 1441년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뒤 1467년 함경도 지방에서 여진족과 반란을 일으킨 조선의 무장출신인 이시애의 난을 평정했다.


그는 곧바로 25세에 공조판서와 병조판서에 연달아 올랐다. 그해 유자광이 그가 지은 ‘북정가’(北征歌)를 고쳐 반역을 꾀한다고 고발해 예종1년인 1468년 겨우 26세의 나이에 억울하게 죽었다. 순조 때인 1818년에 관직이 복구됐으며 이순신과 같은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유신시대인 1970년대에 방송사 주관인 강변가요제가 청평의 안전유원지와 가평의 남이섬에서 열려 신선한 노래와 연주에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 남이섬의 나무숲이 알려졌다. 이미 고인이 된 수재 민병도씨가 1965년 모래뿐인 불모지 남이섬을 매입해 나무를 심기 시작해 호젓한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유주인 ㈜경춘관광이 처음 9홀 골프장을 열었으나 한강식수 오염 때문에 폐쇄됐고 그 곳에 메타세콰이어라는 새 수종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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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이섬을 사들여 숲으로 가꾼 민병도 선생을 소개한 '남이섬 할아버지 숯이 되다' ⓒ데일리매거진

숲 끝에 그의 공적이 ’숲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설명에 숲 앞에 붙어있다.


호젓하던 남이섬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2002년 TV 드라마 <겨울연가>를 촬영해 주인공 배용준이 일본인들에게 ‘욘사마’로 인기를 끌면서다. 일본인 아줌마 팬들이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내려 여기까지 찾아왔다.

배용준과 여주인공 최지우가 첫 키스하던 장소가 사진으로 서 있다. 이어 중국과 대만의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왔고 요즘은 동남아의 베트남, 태국관광객들이 몰린다. 이 날도 베트남대학생 단체를 비롯해 베트남인들이 가장 많아 보였다.


지금은 남이섬은 전체가 각종 이벤트 건물로 빽빽하다. 우리나라 유일의 노래박물관, 유니세프홀, 갤러리, 공예원과 한식 호텔건물인 정관루(靜觀樓)와 식당과 카페, 가족 놀이시설 등이 다. 섬을 한바퀴 도는 미니열차 선로를 따라 즐비하다. 나무들이 만들어 준 사철 천국이라 배에서 내려 남이장군묘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양편에 가평의 명물인 잣나무들이 먼저 길을 안내한다.


가을이면 중앙광장의 은행나무 길은 가을이면 황금색 카페트를 깔아 놓은 것 같을 거다. 끝부분에는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메타세쿼이아 눈길은 이국적이다.


강변에는 자작나무 길과 갈대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나무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친구들과 점심식사 후 많이 달라진 섬을 일주했는데 걸아서 1시간정도 걸렸다. 1인용부터 가족이 다 탈 수 있는 6인용까지 다양한 자전거를 이용해 섬 전체를 도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남이나라’구상은 만화가 출신인 강우현씨가 90년대 중반 ㈜ 남이섬의 대표로 오면서부터 만들어졌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곳을 ‘한국의 100대 관광지’로 살려냈고 6년 전부터 강우현씨는 제주에 내려가 ‘탐나라공화국’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남이섬은 원래 강원도와 경기도를 경계로 만든 북한강의 북쪽이라 강원도 소속이었다.


섬이 되면서 경기도 가평군이 되어 바로 위 ‘재즈페스티벌’로 유명한 자라섬과 함께 경기도의 큰 수입원이다.


강변의 조그만 봉우리가 홍수나면 물에 잠겨 강원도로서는 별 쓸모가 없는 땅이라 경기도에 넘겨줬다가 지금은 아쉬워한다는 후문이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건물의 주춧돌이 되었네.’라는 성경구절대로 된 셈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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