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세상이야기/신춘기행③] 서울 남산의 600년 된 벚꽃길을 함께 걷다

남영진 논설고문 기자 / 기사승인 : 2019-05-02 09: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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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4월말의 남산 벚꽃과 신록의 숲은 5월의 화려함에 뒤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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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봄꽃이 한창이던 지난4월20일 토요일 오전에 2시간 정도 남산 북쪽 산책로를 걸었다. 67년부터 서울생활 50여년이 지났지만 남산을 걸어 오르는 건 10회나 될까? 70-80년대엔 시골에서 친구나 친척들이 올라오면 대부분 케이블카를 타고 팔각정을 올랐기 때문에 걸어보기는 동창회나 회사의 행사 때 정도였으리라. 그러고 보니 높이 솟은 남산타워 꼭대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외려 1988-89년 1년 남짓 일본 도쿄의 게이오(慶應)대학 신문연구소에서 연수를 할 때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도쿄타워를 3번이나 방문했다. 남산은 가까워서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기회가 있어도 다름 사람들만 보내고 밑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래서 2년 전 잠실에 최고층 롯데타워가 생기자마자 2번이나 올라갔지만 도쿄타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번 정도 올라가볼 정도의 코스는 된다.


장미가 피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4월말의 남산 벚꽃과 신록의 숲은 5월의 화려함에 뒤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회현역에서 남대문시장 골목길을 타고 남산 백범광장으로 오르는 아스팔트와 계단 길에는 간단한 등산복을 입은 가족단위의 시민들이 줄지어 올라갔다.

필자가 근무했던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2019 광주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성공개최기념 남산걷기대회‘라는 긴 타이틀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일보가 지난 50여 년간 매달 주최해온 남산거북이마라톤이다. 아침 8시 반부터 3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이 있는 백범광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전문 사회자의 유도로 흥겨운 음악을 흥을 돋우고 9시부터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가 섞여 핀 숲속의 북측 순환로를 따라 국립극장 삼거리 반환점을 2시간가량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2018년 미스코리아 4명과 경희중고교 동창회원들이 참가해 ’봄꽃의 계절‘인 4월 연두 빛 산길을 가족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 6km구간을 걸었다. 돌아와 주최측이 마련한 점심을 즐기며 행운권 추첨으로 공기청정기, 운동화, 광천 김, 바디로직 리포머 등 선물을 받고 식후행사를 즐기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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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조선 태조가 남산에 세운 국사당터, 이 산신을 목멱대왕이라 명명해 남산을 목멱산이라 불렀다. ⓒ데일리매거진

한국일보 선후배들인 필자와 문창재 전 논설주간, 임종건 전 서울경제사장, 김수종 전 주필, 이유식 현 논설고문, 허경회 전 편집부국장, 민기홍 산악회총무등 7인도 이날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의 권유로 대회에 참가했다. 남산 길을 많이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케이블카 밑으로 완만하게 오르는 계단은 낯설었다. 여러 벚나무 중 왕벚나무는 일본의 겹사꾸라와 달리 제주도가 원산이라고 제주출신의 김수종 선배가 알려주었다. 특이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버들벚꽃도 종종 보였다.

등반도중 70년대 박정희대통령의 유신독재시절 남산타워를 세울 때 당시 서울시청을 출입했던 문창재선배가 쓴 기사와 사진이 말썽이나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이 청와대로 끌려가 혼이 난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건설현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찍은 “청와대를 지나 멀리 북한까지 보인다.”는 사진설명에 청와대보안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경위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독재자 박정희는 테러공격에 대비해 서울 시내 청와대가 보이는 고층건물의 북측창문은 검은 천으로 가리게 했다. 이 장막은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시절까지 있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92년 이후에야 걷혔다. 82년 경복궁앞의 중학동 한국일보에 입사했던 필자도 길가 언덕 위 사옥꼭대기 13층 있는 ’송현클럽‘ 카페 길가 쪽 창문에 10여년 검은 장막이 쳐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행은 일제 강점기 일본신사(神祠)가 있었다는 남산식물원을 옆으로 끼고 1시간 정도 청와대 북악산과 서울 시내를 보며 걸었다. 계단 길을 올라 남산팔각정에 다다라 한숨 쉬었다.

오래전에도 보았던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가 촘촘히 걸려있었다. 가져온 사과 참외 등으로 간식을 먹고 대회 참가자들과 달리 성벽 옆의 샛길을 따라 내려가니 자유총연맹과 신라호텔이 보였다.


필자가 90년대 초 통일원과 민주평통을 출입할 때 자유총연맹 건물에 있던 평통 공보실직원들과 뒤의 성벽에 걸터앉아 도시락과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4소문중 하나인 광희문(시구문)에서부터 신라호텔, 자유총연맹 건물을 지나 팔각정까지 성벽이 복원됐다. 옛날 성벽 공사를 한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지등이 새겨진 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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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남산의 산책로 계단까지 축 내려와있는 버들벚꽃.남산은 지금 벚꽃 라일락 조팝나무등 꽃과 연두잎이 한창이다. ⓒ데일리매거진

국립극장과 동국대사이의 산책로에서 반환점을 도는 일반참가자들을 만났다. 이 길은 장충단공원을 거쳐 오는 시민들과 남산 한옥마을이나 숭의여대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어서 붐볐다. 점심장소를 ’필동면옥‘으로 정했기 때문에 남산의 활터인 석호정(石虎亭)쪽으로 내려왔다.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황학정‘이 조선시대 왕들과 문무백관들이 활을 쏘던 관립활터라면 여기는 민간인들이 다니던 곳이었다.


활터가 오래돼 시초도 알 수 없다. 한국전쟁 때 건물과 모든 자료가 없어져 활을 즐기던 동네노인들이 1956년 이곳의 노인정을 보수해 과녁판을 세워 지금의 모습으로 내려온다. 남산 한옥마을을 지나 ’필동면옥‘에서 돼지고기 편육과 소맥으로 오랜만에 땀을 흘린 기쁨을 만끽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대한극장 카페서 커피 한잔씩 하고 헤어졌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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