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27일 노사 합의로 잠잠해질 것으로 여겨졌던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노-사, 노-노 갈등에서 노-정을 넘어 현 정부의 정체성을 가르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노사간 파업 철회에 합의했지만, 일부 조합원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5m 크레인에서 해고자들의 복직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결의 실마리를 쥔 한진중공업 사측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사태가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으로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부 노조원들은 6월 27일 이뤄진 노사합의는 조합원 동의 없이 노조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사측과 합의한 것이고, 해고자 복직 문제도 해결돼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사측은 물론 노조 집행부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있어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2월15일 사측이 2년여 동안 영도와 다대포 조선소가 신규 수주를 하지 못해 상황이 어려워 4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나서면서 촉발됐다.
결국 노조는 같은 달 20일 사측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6월 27일 노사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그렇게 약 7개월여 장기 파업은 시작됐다.
당시 노조는 "사측이 올해(2010년) 초 '구조조정 중단, 수주경쟁력 확보'라는 합의를 해놓고도 다시 정리해고를 요구하고 있다"며 "사측이 영도조선소엔 수주를 하지 않아 결국 정리해고에 이은 조선소 폐쇄를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영도와 다대포조선소가 2년간 신규 수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실시하게 됐다"며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주를 못한 만큼 구조조정을 통해 수주 경쟁력을 높여 영도조선소를 고기술·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첨단 조선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측 설명과 달리 지난해 12월15일 170명을 정리해고 한 다음날 한진중공업은 174억을 주주 배당했다. 며칠 뒤에는 52억원을 현금배당 했다. 이 돈의 절반 이상이 대주주인 조남호 회장과 아들인 조원국 상무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또 며칠 후에는 조 회장과 아들인 상무 등등의 임원 봉급을 2억에서 3억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회사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돈이 없어 당시 보유주식 100주당 1주로 배당했다. 총 주식수가 4800만주 정도인데 대략 48만주다. 이를 시가인 3만5000원 가량으로 곱해 나온 게 174억원이다"며 "지주사인 현대중공업홀딩스가 33% 가량, 외국인이 25%, 기관이 10% 가량 갖고 있고 나머지는 개미다. 주주들은 주식 배당 싫어한다. 100분의 1로 배당한 것을 어디다 팔수 있겠나. 지주사도 지분 때문에 팔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 배당도 금액으로 환산하려면 액면가인 5000원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24억원 정도에 그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배당으로 5000억원을 가져갔다는데, 우리는 회장을 비롯한 주주들에게 현금은커녕 팔수도 없는 주식으로 배당했다. 174억원을 가져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비난이 가시지 않고 있다. 수주를 못해 직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회사가 사주와 그 일가에게는 100억원대 배당을 한 것은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7일 노사 합의 며칠 후에는 6척을 수주했다는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노사합의를 기다렸다는 듯 발표해 지탄을 받았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어떤 국민이 이걸 납득하겠는가. 조남호 회장이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남호 회장이 나서면 해결될 일이다. 배당해간 174억이니 52억이니 이것만 갖고도 정리해고 한 사람들 아마 10년은 봉급 줄 것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법을 요구하는 이같은 인식은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도조선소가 있는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3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단순한 노사갈등, 노노갈등을 넘어 이 정권과 정부의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면서 "정부는 속수무책, 당은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근본적 원인 접근과 처방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정권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억수 같은 장대비 속에서도 1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서 몰려든 시위대가 모두 '정권타도'에 공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정권이 싫어 몰려온 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진중공업 사태의 원인은 사주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인데 정부가 여기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당 지도부가) 오늘부로 이런 위기 대처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는 "어느 경영자가 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분명히 이야기해야 한다. 법 위반 차원을 넘어 기업의 일반적 사회적 책임, 경영상 도덕상의 문제에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정치인이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의 말처럼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사, 노-노 갈등을 넘어 정치 이슈화되고 있지만 정작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조남호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조 회장을 불러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열려 했지만 조 회장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 전원도 불참해 무산됐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회장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조와 대화는 이재용 사장이 직접했고,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사장이다. 작년 10월 국감때도 이 사장이 나가 직접 답변했다"며 "이제 와서 회장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 공세이자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사 합의 이후 회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1400명 직원 모두 출근해 일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에서 일어난 일에 관계도 없는 외부 세력과 정치권이 (이 사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버스'니 하는 사람들이 밖에서 난장을 피고, 정치권이 회장 운운하는 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치겠다"고 토로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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