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세상이야기/동남아-기행②] 베트남인들은 왜 월남파병 때의 한국군의 학살책임을 묻지 않는가?

남영진 논설고문 기자 / 기사승인 : 2019-08-23 09: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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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여유,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라며 참전책임 애써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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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베트남에 갈 때마다 마음이 좀 찔린다. 지난 7월에 갔을 때 찜찜한 이유를 알았다. 월남파병 때 베트콩을 죽이고 민간인을 학살했기 때문에 혹시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찝찝함이 있었다. ‘박항서 매직’ 신드롬과 높은 한류붐으로 베트남 젊은이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나 같은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그 이름 맹호부대 용사들아!”라고 목소리 높여 불렀던 기억이 선하다. 월남파병 국군의 활약상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1965년-1974년 거의 10년간 채명신, 이세호 파월사령관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월남내의 베트콩을 학살했던 ‘전공’이 연일 우리 언론에 크게 소개됐었다.

‘따이한’ ‘태권도’등으로 이름을 날리며 당시 월남에서 주둔했던 십자성, 비둘기, 맹호, 백마, 청룡부대들의 전공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베트남 중부 하미마을에서의 민간인학살 사건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베트남인 피해 가족들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식민지시대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일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국정부는 베트남파병에 대해 ‘사과’나 ‘배상’을 했었는가라고 항변할 때는 움찔한다. 분명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 때 잠깐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내용과 수위는 잘 알려지진 않았다.


김대중대통령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때 호찌민주석 묘소를 참배하고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처음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2001년 8월 방한한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아직도 월남파병 전사자, 부상자와 고엽제피해자의 가족과 친척들은 아직 ‘반공과 자유주의 수호’를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가 껄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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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베트남 미국유학출신 교수의 호치민교외 저택의 홈바.북쪽 출신 엘리뜨들의 승자의 여유를 느낄수 있다. ⓒ데일리매거진


필자도 1996년 한국기자협회장 자격으로 12명의 기자단과 함께 베트남기자협회 초청을 받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월남전 때의 베트남인을 죽인데 대한 사과’인사를 했다. 그러나 하노이라디오방송 사장이었던 베트남기자협회 회장은 환영사에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는 잊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말만했다. 의아했다.


만찬이 진행되고 어느 정도 술잔이 돌자 옆에 앉았던 베트남전 때 월맹군의 종군기자였던 그는 “남회장, 당시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었으니 우리는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오히려 쑥스러웠다. 이후 지난 7년간 하노이와 호치민을 번갈아 다니며 대학, 고교동창들과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면서 베트남인들이 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적은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야 그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됐다. 지금 베트남의 엘리뜨들은 거의 북쪽 출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을 물리치고 베트남을 통일했다는 ‘승자의 여유’를 가졌다.

프랑스를 몰아내고 이를 이은 미국과의 전쟁의 승전국이기 때문에 한국군을 비롯한 영국, 호주, 태국군 등 미국측 동맹 군인들을 ‘미국의 꼬봉’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당시 남쪽의 지도자들은 거의 사망했거나 숙청돼 그들의 생각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 남쪽 호치민시에서 베트남친지의 호화저택에 친구들과 오찬초대를 받았다. 그는 일찍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대학교수이면서 자기 컨설팅기업을 경영하는 엘리뜨였다. 모친은 돌아가시고 북쪽 하이퐁출신의 80대 부친이 식탁에 앉아 주재했다. 영국 대학에 유학중인 손자도 함께했다. 영어교사를 했던 그 부친이 담담하게 전쟁 시기와 호치민으로 내려온 이유 등을 말할 때 ‘승자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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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호치민시청옆 중앙우체국 내부.프랑스식민지 시대건물에 남쪽을 무력통일한 호치민주석의 사진이 자리잡았다.베트남인들은 호주석을 전쟁영웅미지만 호아저씨라고 친근하게 부르고있다. ⓒ데일리매거진

오래된 교민들은 "김대중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에 이은 경제지원이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김대통령이 귀국 후 실제로 그때는 거액인 2400만 달러를 지원해 이것으로 베트남 전국 학교의 책걸상과 칠판을 바꾸었다. 이것이 베트남과의 경협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교민들은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과 싸워 이긴 승전국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해 아무한테나 돈을 받지 않는다. 김 대통령이 예를 갖춰 사과했기에 베트남이 한국의 지원금을 받은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이후 대우 김우중회장, 태광 박연차회장등의 투자와 공장설립으로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한국기업들이 물고를 텄다. 이제는 베트남인들의 ‘과거는 잊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자’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이를 보면 지금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무라야마. 고노, 하토야마총리 등 역대 총리들의 ‘사죄’발언으로 한국인의 마음이 풀릴만했는데 아베총리가 이를 다 부인하고 경제보복까지 하니 어찌 진정성을 인정하겠는가? 아베의 역사인식이 너무 반인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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