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세상이야기/신춘기행⑤] “월류(月留) 산행 땐 비가 안 온다”는 징크스 지켜져

남영진 논설고문 기자 / 기사승인 : 2019-05-27 11:33:15
  • -
  • +
  • 인쇄
산악회는 많지만 면(面)단위 재경(在京)산악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남영진사진.jpg
▲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매서운 소백산(비로봉 1,440m) 칼바람에 질렸다. 그러나 비로봉 정상은 밟았다. 소백산 원정대가 지난 5월19일 일요일 아침 7시 사당역에서 모였다. 충북 영동군 황간초등학교 동창들의 재경 모임인 월류(月留)산악회(회장 방노준) ‘원족산행’이다. 이번이 229차였으니 역사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같은 고향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수도권에 사는 100여명의 회원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째 일요일만 되면 서울 주위의 산을 오른다. 간단한 ‘정상 간식’후 내려와 쏘주, 막걸리잔을 나눈다. 산악회는 많지만 면(面)단위 재경(在京)산악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매년 봄가을 2번씩 가는 ‘원족 산행’이었다. 초등시절 봄, 가을에 가는 신나는 소풍을 어른들은 원족(遠足)이라 불렀다. 일제 때 근대식 학교가 생기면서 일본인들이 ‘원족’(멀리 걸어갔다 옴)이라 불렀고 해방 후 60년대부터는 ‘소풍’(逍風,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감)으로 바뀐 것 같다.


북한과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아직도 ‘원족’으로 쓴다고 한다. 정기산행 외에 연 2번 버스를 대절해 간다. 원족이란 말에 추억이 되살아나 맘이 설렌다.


버스 2대가 거의 만석이었다. 45인승이니 도중 죽전에서 타는 친구를 합치면 87명 이었다. 중간 휴게소에 들러 2시간여 버스를 타고 소백산 밑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에 도착했다. 오를 때는 순해보였는데 5시간여 산을 타보니 역시 만만치 않은 산이다.


서울은 물론 전국의 산악동호회가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주차장이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23일부터 유명한 ‘소백산 철쭉제’라 해서 더 붐볐다.


temp_1558923283105.1296963922.jpeg

두 팀으로 나눴다. 40대부터 70대의 심흥석선배, 김태길고문, 정성화 전회장, 60대말의 전삼중, 장순호전회장, 손대규, 배명식, 설정희 선배 등 다세대군이라 모두 1400여 고지를 오르기엔 무리였다. 방회장과 김주식 총무를 비롯해 비교적 젊은 28명의 ‘특공대’가 비로봉 등정에 나섰다.


‘여성 다람쥐’인 70대 심기화 선배, 방회장과 동기인 원종영 선배, 그리고 내 동기 2명과 1년 여자후배인 김정혜까지 60대 이상도 7명이나 됐다. 나머지는 단양읍내에서 남한강대교를 넘어 고수동굴과 다리안 폭포를 지나 천동쉼터까지 올라와 하산하는 우리와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무리해서 비로봉 등정팀에 끼었다. 5,6년 전 대학교수시절 3번의 신입생MT가 단양읍내 대명콘도에서 있었다. 숙소에서 강 건너 우뚝솟은 소백산천문대 700여m 고지가 보여 새벽에 2번이나 혼자 오른 적이 있다. 옆에 패러글라이더 활강장이 있는 곳이다. 그 위의 연화봉과 비로봉을 올라보고 싶었다.


60대중반이라 앞으로 기회가 없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서울 아파트에는 새빨간 철쭉꽃이 지고 푸른 잎으로 덮였지만 높은 소백산에서 연분홍 꽃봉오리를 실컷 구경할 줄 알았다. 돌길과 계단을 1시간정도 오르면서 몇 번이나 후회했다. 정상을 넘어 반대편 하산길이니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오는 도중 잠잠했던 날씨가 비로봉 정상을 300여m 남겨둔 마지막 목척계단에서부터 비를 동반한 칼바람으로 변했다. 동반회원들이 없었다면 ‘조난’을 걱정할 정도였다. 죽기로 정상문턱에 다다르니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표지석에서 ‘인증 샷’을 찍으려니 긴 줄이 이어져 꽤 기다려야 했다. 춥고 피곤해 포기했다.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비바람이 얼굴을 때려 모자를 잡고 천동계곡 쪽으로 목책을 타니 좀 잠잠해졌다. 하산 전망대에서 동료들이 가져온 막걸리와 족발, 장떡으로 요기를 하니 추위가 좀 풀렸다. 역시 소백산 칼바람은 셌다.

10여 년 전부터 “월류산행 때는 비가 안 온다.”는 징크스가 있다. 아무리 일기예보에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온다고 해도 강풍은 몰라도 비에 젖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 날도 토요일부터 제주와 남부지역, 그리고 일요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해 우의와 우산을 챙기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울을 출발할 때는 하늘이 어두웠는데 등산 중에는 비가 없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람에 비까지 내려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는데 하산할 때는 잔잔했다. 이어 저녁식사하고 서울에 올라오는 버스차창에 비가 내렸다. 이번에도 ‘징크스’가 맞은 것이다.

temp_1558923257197.-1406654048.jpeg
▲사진= 비안개로 덮힌 소백산 비로봉.대기줄이 길어 나는 인증샷 못찍고 남만 찍어줬다. ⓒ데일리매거진

어의곡과 천동계곡은 소백산에 오르는 4.7km 구간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죽령이나 희방사 쪽에서 오르는 코스는 거리가 멀어 당일산행으로는 어렵다. 새밭유원지를 거쳐 어의곡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3km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중간에 쉬면서 물과 참외를 먹고 거의 왔을 거라 생각했다. 정상까지 아직도 1.7km가 남았다. ‘죽음의 나무계단’을 지나 하늘이 보이는 능선에 올랐다. 숨을 몰아쉰다.


0.8km의 능선을 따라 걷는데 비바람에 안개가 자욱하다. 사진으로 보던 멋있는 조망은 꽝이다. 비로봉까지 데크길 400m. 세찬 바람에 몸까지 휘청거린다. 다리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오른쪽이 주목단지라는데 볼 염두도 안 난다. 철쭉은 올라오다 갓 핀 연분홍 몇 떨기가 전부였다. 정상에서 못 쉬고 곧바로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데크 전망대에서 드디어 간식거리를 펴놓았다. 친구 서기석이 안 보인다. 동기 박영호 전 재경회장이 찾아본다며 정상 쪽으로 되올라가 다리에 쥐가 나 앉아있던 친구를 부축해왔다. 안심이다.


temp_1558923231808.164088870.jpeg
▲사진=재경(在京)산악회의 소백산 ‘원족 산행’ 에서 일행중 한명이 비로봉 정상 표지석을 기대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데일리매거진

하산까지 약 4.5km. 내리막길이라 2시간 정도지만 대부분 돌길이라 조심하며 걸었다. 한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서울둘레길 산행 때 신던 트래킹화라 젖은 돌이 미끄러웠다. 결국 오른쪽 엄지발톱에 탈이 났다. 소백산을 쉽게 봤다가 혼이 났다.


천동계곡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탐방지원센터에서 대기조 ‘척후병’을 만나니 안심이 됐다. 하산해 버스정류장 앞 식당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두부김치찌개와 막걸리로 안팎의 추위와 허기를 달랬다. 경품추첨은 보석점을 하는 박인근선배가 내놓은 진주반지가 ‘대박’이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의 줄기가 태백산 근처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충북과 경북도의 경계인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비로봉(1,439.7m)을 비롯하여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봉(1,148m) 등 이어진 병풍 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다.


이번에도 결국 비를 피했다. 자연현상인 비를 안 맞을 수는 없겠지만 선후배간의 끈끈한 우정과 배려로 어지간한 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월류산악회의 깡과 패기가 돋보인 즐거운 산행이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저작권자ⓒ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

스포츠

+

PHOTO NEWS